“사흘째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졸피뎀이 잠이 잘 온다고 하던데요?”“하루 반 알씩만 일단 드셔보세요.”
29일 오전 한 원격진료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의사에게 불면증 증세를 호소하자 졸피뎀을 처방해주겠다는 답이 왔다. 졸피뎀은 불면증의 단기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로,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강화시켜 수면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복용 시 환각과 두통 증세가 나타날 수 있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 번에 졸피뎀을 28알 이상 처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원격진료 앱을 통해 졸피뎀 10알을 처방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다.
모바일 원격진료·처방약 배달 앱 ‘닥터나우’는 구글 앱스토어에서 5위, 애플 앱스토어에서 3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닥터나우는 비대면 원격진료 이후 처방전을 내려준 뒤 약 배달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닥터나우에 따르면 월 평균 이용자는 9만명이며, 현재까지 국내에서 닥터나우를 통해 원격진료를 받은 건수는 211만 건을 넘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원격 진료를 허용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코로나 감염병 위기대응 심각단계의 위기경보 발령 기간 동안에는 의사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환자와 전화 상담 후 약 처방이 가능하다.
◇ “의료 서비스 혁신” vs “위험 약물 취급 우려”
30대 여성 A씨는 최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원격진료부터 약 처방까지 단 10분 만에 완료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평소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상사 눈치를 보며 일찍 퇴근하거나 연차를 사용해야 했는데 앱으로는 앉은 자리에서 약을 받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전날 운동갈 때 바람을 많이 맞아서 오한이 들었는데 회사를 퇴근하고 병원에 가면 너무 늦더라”라며 “원격진료를 찾아보다가 닥터나우를 이용하게 됐다 ”면서 “사용해보니 너무 편리하고 좋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B씨도 닥터나우의 편리함을 경험했다. 하필 대부분의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은 일요일에 심한 몸살을 겪었던 B씨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원격진료 앱을 검색해 다운로드했다. 생각보다 간편한 서비스에 크게 놀람과 동시에 만족감을 느꼈다는 B씨는 “주말에 병원에 가는 게 쉽지 않은데 어플로 의사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약도 처방받아서 다시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사회 반응은 엇갈렸다. 대한약사회와 각 지역 약사회는 ‘배달 약국’이 편리성을 앞세워 국민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약도 시간이 지날수록 종류가 늘어나듯이, 원격진료·처방 플랫폼 하나가 자리잡으면 계속해서 생겨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약사회는 지난 24일부터 선릉역과 닥터나우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닥터나우 본사 앞에서 만난 김용원 서울시약사회 사무국장은 “환자들에게 걸려오는 상담 전화가 앱에 등록된 의사 본인인지도 환자들은 알 방법이 없다”면서 “코로나 상황 때문에 한시적으로 풀어줬던 규제를 비집고 들어와 본인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인혜 중구 약사회장은 “환자들에게 복약지도를 대면으로 할 때에도 뒤늦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어플만으로는 어떻게 복약지도를 할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약 조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우경아 은평구 약사회장도 “졸피뎀은 각종 범죄에 쓰이기도 하는 위험 약물인데 그런 약을 어떠한 제재도 없이 처방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통화 1분만에 ‘졸피뎀’ 처방, 다른 병원서도 연이어 처방
기자가 직접 체험해보니 간단한 사용법의 이면에는 허술한 진료 체계가 있었다. 앱에 접속한 후 진료받고 싶은 병원을 고르고 주민번호와 간단한 증상을 적어서 제출하면 ‘진료접수가 완료됐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로부터 몇 분 후 해당 병원 의사로부터 전화가 오면 자신의 증상을 말하면 된다.
기자가 불면증을 호소하자 의사는 1분 만에 “일단 졸피뎀 3알 처방해드리겠다”고 답했다. 접수부터 진료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분이었다. 같은 약물을 곧바로 중복해서 처방받는 것도 가능했다.
기자는 다른 병원에도 같은 증상으로 진료 문의를 넣고 졸피뎀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의사는 4분 만에 “일단 하루에 반 알 씩 드셔보세요”라며 7알을 처방해줬다. 별다른 제재 없이 특별한 사유 없어도 누구나 졸피뎀을 처방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전화 상담 이후 앱에 저장된 모바일 처방전을 인근 약국에 보내면 약을 처방 받을 수 있다. 3km 이내에 있는 약국에서는 배달로도 약 수령이 가능하다. 기자는 5분 동안 10알의 졸피뎀을 아무런 제재 없이 처방받았다.
닥터나우 측은 약물 오남용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임경호 닥터나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어플에 올라온 의사들은 사업자 등록증, 의사 면허증 등을 토대로 인증이 완료된 사람들”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DUR(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어 환자의 처방 이력 등이 확인 가능해 오남용 방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본인인증 등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개선할 계획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