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폰 12를 구입한 김준성(65)씨는 자녀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최신 휴대전화로 개통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꼼꼼히 들여다본 딸은 김씨에게 “36개월 할부에 이자가 매달 원금의 5.9%가 붙는다”면서 “할부 기간이 늘어날수록 이자가 불어나 더 비싸게 산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해당 대리점에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한탄했다.
최근 휴대전화를 온라인을 통해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노년층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찾으면서 ‘불완전판매’ 피해를 입는 경우도 늘었다. 불완전판매란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상품에 대한 설명을 누락하거나, 상품에 가입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성실히 설명하지 않은 채 판매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를 보호하고 판매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노년층에게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유인해 수백만원의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정선봉(79)씨는 ‘휴대전화 요금이 미납됐으니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서를 받고 이의신청을 하기 위해 지난 25일 강남경찰서를 찾았다.
정씨는 작년 7월 선릉역 인근 대형 통신사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이름만 적으면 40만원을 준다”는 매장 직원의 말에 서명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법원에서 휴대전화 비용 500만원이 밀렸다는 지급명령서가 왔다. 확인해보니 정씨 명의로 두 개의 번호가 개통된 상태였다. 정씨는 “전혀 몰랐던 일”이라며 “한 대당 요금이 200만원대로 총 500만원이 밀려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서명을 한 건 내 잘못이지만, 통신사에서도 요금이 수백만원 밀릴 때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이동통신사들이 휴대전화 무인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을 활성화하고 있지만, 중·장년이나 노년층은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적 압박을 받는 직영 대리점 직원들이나 점주들이 노년층을 상대로 불완전판매를 시도하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구에서 휴대전화 가게를 운영 중인 나승윤(50)씨는 “고령자들은 키오스크와 같은 기계를 다루는 것을 힘들어 해 가게로 직접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왕십리역 인근 휴대전화 대리점 점장 김모(30)씨는 “워낙 온라인 매장이 잘 되어있다 보니 대학생들은 대리점이나 직영점은 잘 찾지 않는다”라며 “판매 실적에 대한 압박은 늘 있고, 매장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코로나가 맞물리면서 더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통신사 측은 전국의 직영점과 대리점을 관리하다 보니, 본사에서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모든 민원을 처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신고가 들어와도 고객과 직원 사이의 입장 차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검토한 후 매장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상품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 편”이라며 “서비스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오면 사실관계를 확인해 해당 직원을 처벌하거나 고객에게 보상을 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처벌의 수준은 매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직영점은 몰라도 대리점에 있어서는 운영지침에 관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대리점이 고객의 명의를 도용해서 휴대폰을 개통하는 등 통신사와 위탁관계에서 계약을 위반했을 경우 통신사 차원에서 대리점과의 계약 해지는 가능하다”면서도 “대리점는 하나의 법인이기 때문에 개인 사원의 일탈은 회사의 관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인층의 눈높이에 맞는 상품설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상품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책임은 판매자 측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대리점이 판매 과정 중 누락한 설명이나 부당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는지 등을 평가하고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