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분양사가 ‘병원 입점’ ‘약국 독점 운영’을 계약 조건으로 걸고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했는데 입점 병원이 두 달 만에 문을 닫았다면 약국 점포를 분양받은 사람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재판장 김도요 부장판사)는 A, B씨가 분양사 C사와 중개인 D씨를 상대로 제기한 원상회복 등 청구 소송 1심에서 “C사는 A씨에게 3억1490만원, B씨에게 2억875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지난 8월 판결했다.
A씨와 B씨는 지난 2020년 3월 경기도 하남시의 한 신축 상가 분양을 맡은 C사와 점포 하나씩에 대해 각각 11억4400만원, 10억4000원에 분양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는 A씨와 B씨가 분양받은 점포가 ‘약국 독점 상가’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게다가 C사는 “준공 시(2020년 3월 예정) 병의원이 입점하지 않을 경우, 각 점포에 약국이 입점하지 않을 경우 조건 없이 계약 해지와 계약금 전액 환불한다”는 확약서도 작성해줬다. 이후 A씨, B씨는 C사와 중개인 D씨의 중개로 약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고, 2020년 6월 약국은 문을 열었다.
문제는 병원 입점이었다. C사는 같은 해 2월 한 의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 병원이 개업한 건 건물이 준공된 시점(5월)보다도 늦은 9월 7일이었다. 심지어 이 병원은 타인 명의 의료기관 개설 신고 등을 이유로 10월 30일 폐업했다. 영업 기간을 2달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이에 A, B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계약상 건물에 병원을 입점시키는 것이 C사와 D씨의 의무인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채무불이행으로, 건물에 병원이 입점했을 경우와 비교한 시세 차액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C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확약서는 피고 C사의 손해배상 책임에 관해 별도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분양 계약에 따라 C사에는 건물 준공 시점까지 병원을 입점시켜 운영하도록 할 의무가 있었고, 이를 위반했으므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병원 입점 여부는 약국 임대차 가능성과 차임 수준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에 (분양 계약에) 핵심적인 고려사항이었을 것”이라며 “C사가 병원 입점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A, B씨의 점포들이 병원 입점 후 약국으로 분양됐을 경우의 시가와, 병원 입점 없이 분양됐을 경우의 시가 차액에 상응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감정 결과에 따르면, 분양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A씨, B씨 점포의 분양가는 병원이 입점하지 않은 건물 점포의 2배(A씨 점포 6억2690만원, B씨 점포 5억7490만원) 수준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중개인 D씨에 대해서는 “C사의 홍보 행위 등에 관여했는지에 관한 증거가 부족하고, 확약서 당사자가 아니어서 계약상 (병원 입점)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