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권리가 다른 사람의 권리와 충돌하는 사건들이 있다. 일도양단 방식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한쪽은 심각한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 두 권리 모두 합리적인 범위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이에 따르는 게 좋은 판결일 것이다.

대법원에서 지난 4월 확정된 ‘재림교 신자 로스쿨 입시 판결’도 대안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대법원은 “재림교 신자가 교리에 따를 수 있도록 로스쿨 면접 시간을 변경한다고 해도 공익이나 다른 응시자의 이익이 제한받는 폭은 현저하게 적다”고 판단했다. 재림교 신자인 수험생 요청과 다른 수험생 권익을 함께 반영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로스쿨이 정한 시각에 면접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됐던 재림교 신자 A씨는 4년 만에 같은 로스쿨 면접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이 사건에서 A씨는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 상고심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두 차례 승소를 대리한 박성호(사법연수원 32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통틀어 종교 교리에 따른 시험 일정 변경 청구가 받아들여진 첫 판결”이라고 말했다.

박성호(사법연수원 32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종교적 이유로 면접 시간 변경 요청, 학교는 거부하고 불합격 처리

재림교 신자인 A씨는 지난 2021학년도 전남대 로스쿨 시험에 불합격했다. 1단계 필기 시험은 통과했지만, 학교가 정한 2차 면접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림교는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를 종교적 안식일로 정하고 있다. 안식일에는 시험 응시도 금지돼 있어 A씨는 토요일 오전에 잡힌 면접에 가지 못한 것이다.

앞서 A씨는 종교적 이유를 들며 면접 일정 변경을 요청했지만, 학교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A씨는 면접에 불참했고 이후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이에 A씨는 학교를 상대로 불합격 처분 취소, 입학전형 이의 신청 거부 처분 취소 등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본안 판단도 못 받은 1심…2심서 전부 승소

1심 재판부는 A씨의 입학전형 이의 신청 거부 처분 취소 청구를 각하했다. 면접 일정 변경 요구에 대한 학교 측 거부 행위가 행정소송이 심리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1심 재판부는 A씨가 청구한 불합격 처분 취소도 기각했다.

항소심에 투입된 박성호 변호사는 1심 ‘각하’ 결정을 깨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박 변호사는 “본안 판단을 받기 위해 우선 면접 일정 변경을 요청하는 행위가 법규상 ‘신청권’이 있다는 점을 인정받고, 이를 거절하는 행위가 소송 대상이 되는 처분이 된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 등 각종 법령과 대학 측 입학전형관리위원회 규정 등에 의거해 원고에게 면접일정 변경을 요청할 ‘신청권’이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박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면접 일정 변경 거부로 A씨가 입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A씨의 불복 방법의 유무 등을 종합해 볼 때 국민의 기본권 보장 및 권리 구제 확대라는 측면에서 이 사건 거부 행위는 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간접 차별’도 평등 원칙 위배, 항소심 법원이 인정

항소심 재판에서 박성호 변호사는 면접 일정을 토요일로 정하고, 면접 일정 변경을 거부한 학교 측 결정이 ‘간접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해 면접 일정을 정한 것 같지만, 토요일에는 시험을 볼 수 없는 재림교 신자들은 불이익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간접 차별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배한 위법한 처분이라는 게 박 변호사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을 항소심 재판부도 받아들였다. “헌법에서 간접 차별 금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고 간접 차별 금지를 규정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지만 차별 금지와 간접 차별 금지가 본질은 동일한 점, 현재의 헌법 현실은 과거와 같이 차별적 의도가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보다 우회적 차별 내지는 관행이나 사회 구조적인 요소로 인한 차별이 더욱 문제 되는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헌법이 선언한 평등 및 차별 금지의 내용에 간접차별 금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의 의의와 기능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 종교적 양심 지키면서 공익 침해 최소화할 대안 제시

박성호 변호사는 A씨의 청구를 인용하면서 제3자 이익 침해를 최소화할 방안도 제시했다. 재림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을 지키더라도 공익이나 제3자 이익이 크게 침해되지 않다는 점을 설득한 것이다. 그는 “A씨의 면접 시간을 토요일 일몰 후로 정하고, A씨는 면접 당일 자신의 순번이 될 때까지 대기실에 격리돼있는 방식을 택해 공익이 최소한으로 침해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문제 유출 방지를 위해 모든 수험생들이 동시에 응시해야 하는 필기시험과는 달리 일정이 각각 다른 면접은 A씨의 일정을 미루기 위해 다른 학생들의 시간까지 변경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수험생들이 면접을 볼 때 A씨가 격리돼있다면 그가 일몰 후에 면접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수험생보다 더 많은 시간을 준비하는 등의 부당한 혜택을 받을 가능성도 적다. A씨가 입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학교가 면접시간을 변경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제한되는 공익이나 제3자의 이익이 A씨가 입는 불이익보다 적다는 점을 피력했다.

항소심 승소 이후 A씨는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오는 11월 16일 있을 2025학년도 전남대 로스쿨 입시 2차 면접 전형도 다시 치르게 됐다. 학교 측은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임씨의 면접 일정을 토요일 일몰 이후 시간대로 정했다.

대법원은 “헌법 제11조 제1항이 보장하는 평등은 형식적 의미의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의미의 평등을 의미한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의무와 책무를 부담하는 국립대학교 총장인 피고로서는 재림교 신자들의 신청에 따라 그들이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재림교 신자들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시험 일정 변경을 요청한 사안에서 어떠한 경우에 그 시험 일정 변경 요청을 거부하는 것이 위법할 수 있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며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재림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차별받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청의 헌법상 의무의 범위를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