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 회장이 2010~2014년 차명으로 약국을 운영하면서 1000억원대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혐의에 대해 지난달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했다. 이후 법조계에서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 입장에서는 1000억원이 굳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은 이 사건과 관련해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상대로 1000억원의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내렸는데 이번 무죄 확정에 따라 직권 취소했기 때문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1부(주심 대법관 서경환)는 지난달 30일 한진그룹 금고지기 역할을 했던 원종승 정석기업 대표 등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약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부동산 등을 관리하는 비상장 계열사다.
검찰은 지난 2018년 조양호 선대 회장과 원종승 대표 등을 재판에 넘겼다. 조 선대 회장이 2010~2014년 정석기업 소유 건물에서 이른바 ‘차명 약국’을 운영하고 공단에서 1522억원 상당의 요양급여와 의료급여비용을 부정하게 타냈다는 게 주요 혐의다.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은 약사 자격증이 없으면 개설할 수 없다.
검찰은 이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운영자는 조 선대 회장이라고 봤다. 조 선대 회장이 계열사 건물에 약국 공간을 제공하는 일종의 투자를 한 뒤 발생한 이득 중 일정액을 받아 챙겼다고 공소장에 썼다. 조 회장은 2019년 사망하면서 더 이상 재판을 받지 않게 됐다.
2020년 1심 재판부는 약사법 위반과 공단을 속여 요양급여를 타낸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원 대표는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작년 8월 2심 재판부는 약사법 위반, 사기 혐의는 무죄라고 판결했다. 약국을 운영한 약사가 주도적으로 약국을 운영했으며 약품 조제·판매·복약지도를 했다고 판단했다. 약사가 약국 수익 일정 부분을 원 대표와 조 선대 회장 등에게 지급한 것은 해당 건물에서 계속 약국을 운영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고 봤다. 이번에 대법원도 2심 판결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공단이 2018년부터 진행하던 1000억원의 요양급여 환수 작업도 중단됐다. 앞서 공단은 요양급여를 환수하기 위해 조 회장의 서울 종로구 구기동·평창동 단독주택을 가압류했다. 2018년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 환수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조 선대 회장 사망 후 배우자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자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조현민 한진 사장·조원태 한진 회장이 소송을 이어받았다. 형사 소송에서 무죄가 확정되면서 17일 한진그룹 총수 일가 소송대리인이 요양급여 환수처분 취소 소송 취하한 상태다. 공단이 원 대표와 한진그룹 총수일가를 상대로 제기한 591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됐다.
1000억원은 한진그룹에 적지 않은 금액이다. 2016년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 때 조 회장이 직접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진해운에 기부한 사재 400억원이 재산의 20% 라고 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1000억원은 조 회장 당시 재산의 절반이 넘는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로서는 차명 약국 무죄 판결로 보유한 주식, 부동산 등을 매각해 요양급여를 환수해야 하는 위기를 넘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