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상법상 ‘주주평등원칙’에 대해 2주 간격으로 엇갈린 판단을 내놓았다. 지난달 13일에는 주주 간 차등적 취급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27일엔 차등 취급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 제2부에서 심리했다.
이를 두고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헷갈린다”는 반응이 나왔으나, 상법 전문가들은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판결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기본적으로 주주평등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원칙 위반이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상황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조건 이행 못하면 투자금 전액 돌려줘”…대법, 피투자사 손 들어줘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투자자 A씨 등 3명이 바이오 업체 B사 및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낸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일부 파기하고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 등은 지난 2019년 6월 B사의 신주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B사 대표이사는 이해관계인으로 계약에 참여했다. A씨 등 투자자들은 B사의 신주 16만6000주를 총 2억5000만원에 사면서 조건을 달았다. 같은 해 10월까지 조류인플루엔자(AI) 소독제의 질병관리본부 제품 등록을 마치고, 12월까지 조달청 조달 등록을 마치라는 것이었다. 이를 이행하지 못할 시 투자금 전액을 즉시 반환하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결국 B사는 이 조건을 이행하지 못했고, A씨 등은 투자금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해당 계약 조건이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였다. 주주평등원칙이란 상법 제369조 1항에 의거한 원칙이다. 주주는 1주당 1개의 의결권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여기에는 주주가 보유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함의가 있다.
원고 A씨 등은 계약 내용대로 투자금을 반환하고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피고인 B사는 해당 계약 내용이 “회사의 일부 주주인 원고들에게 투하자본의 회수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다른 주주들에게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한다”면서 이것이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맞섰다. 계약 자체가 위법이므로 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1심에서는 B사가 A씨 등 3명에게 투자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봤지만, 2심에선 결과가 뒤집혔다. 해당 조항이 A씨 등의 자본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므로 주주평등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B사의 기존 주주 전원이 A씨 등의 이 같은 계약 조건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A씨 등이 B사가 아닌 대표이사와 맺은 계약에 한해서는 주주평등원칙이 직접 적용되지 않으므로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지만, 2심 판단이 기본적으로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으며 타당하다는 건 인정했다.
◇뉴옵틱스 판결과 달라… “특별한 사정 있으면 주주 간 차별 허용”
이 같은 판결은 앞서 지난달 13일에 나온 대법원 판결과 반대된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디스플레이 제조 업체 뉴옵틱스가 소프트웨어 개발사 틸론을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뉴옵틱스는 2016년 12월 틸론이 발행하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20만주를 20억원에 사들이면서, 향후 틸론이 신주를 발행하려면 자신들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틸론은 이후 뉴옵틱스의 서면동의를 받지 않고 다른 업체를 상대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결국 소송전이 시작됐다.
틸론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납입 자본금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에 사전 서면동의를 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라며 맞섰지만 대법원은 뉴옵틱스의 손을 들어줬다. 주주평등원칙은 지켜져야 하나, 법률이 허용하는 절차와 방식에 따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주주 간 차등적 취급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두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서로 다르게 판단한 이유는 차등적 취급이 정당화될 수 있는 요건 때문이다. 틸론 사건에서 대법원은 주주 간 차등적 취급을 허용해도 될지 판단할 때 총 7가지 요건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설시했다. 그중에는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고 필요할 때” 일부 주주를 차등 취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틸론의 경우 뉴옵틱스의 투자금이 회사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금이었고, 유동성 확보 및 자본 증가에 기여해 주주 전체의 이익을 증진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대법원은 또 뉴옵틱스가 사전동의권 조항을 통해 틸론의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경영 사항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을 받은 것이 다른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반면 B사 사건에서는 일부 주주의 투하자본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계약 조항이 B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만들어 회사와 주주 및 채권자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는 특정 주주에게 상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는 취지다.
실제로 대법원은 틸론 사건에서 이미 “동의권 부여 약정이 사실상 투하자본 전부 또는 일부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투자금 회수를 보장해주는 건 주주평등원칙의 위배를 정당화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문가들 “투하자본 전액 회수, 자본금 빼가 위태롭게 만드는 일”
상법 전문가들은 두 개의 판결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조중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B사 사건의 경우 새로운 자금이 투입돼 자본금으로 잡혔던 것을 유상감자 등의 방식으로 다시 빼가겠다는 얘기니, 회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사를 상대로 주식매수를 청구하는 풋옵션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 조 변호사는 이 판례와 B사 사건 판결이 궤를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틸론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사전 동의권 조항은 ‘회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없는 걸까. 조 변호사는 “설령 기존 주주의 동의를 못 받아 추가 투자를 못 받게 돼서 자본적 기초가 위태로워지는 극단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회사는 상법상 주주평등원칙이 아닌 다른 법리를 근거로 다퉈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틸론 사건에서의 사전 동의권 조항은 이사회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과 달리, B사 사건에서처럼 ‘투자금 회수’를 위해 유상감자를 하거나 자사주 매수를 하려면 주주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 이 점에서 두 사건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조 변호사의 설명이다.
다만, 주주평등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사건을 유형화하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영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대법원이 설시한 요건들은 ‘이 요건이 이렇게 되면 무효, 저렇게 되면 유효’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대원칙을 제시하고 사안에 따라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져 전부 개별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