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역과 경기도 성남 서현역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민적 우려가 커지자, 당정이 흉악범죄를 막기 위한 각종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무차별 범죄른 저지른 범죄자를 가중처벌하는 법안은 물론 가석방 없는 종신형, 사법입원제 등이 대표적이다. 당정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예고’를 테러로 간주하는 방안과 흉악범죄자의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공개하는 법안도 검토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당정이 흉악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을 논의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자칫 사회적 낙인찍기나 처벌 만능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범죄 발생한 뒤인 사후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흉악범죄를 줄이기 위한 예방책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무차별 범죄 가중처벌부터 가석방 없는 종신형까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안은 무차별 범죄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유 의원은 법안 제안 설명에서 “무차별 범죄는 국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재범 위험성이 높아 가중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도 ‘사회에 대한 증오심 등을 표출할 목적으로 한 범죄’에 대해 2배까지 형을 가중해 처벌하는 내용의 특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조 의원은 “이런 유형의 범죄는 국민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가중처벌 방안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범죄를 ‘묻지마 범죄’로 규정할 근거가 부족해 ‘명확성 원칙’에 저촉될 수 있고, 우리나라 사법체계상 법정 최고형이 사형으로 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처벌의 하한선을 높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당정은 ‘절대적 종신형’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형법 개정안 제42조 제2항에는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는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형과 가석방이 허용되지 아니하는 무기형으로 한다’는 내용이 신설된다.
현행 형법은 징역 또는 금고의 종류를 무기와 유기로 나누면서 유기형의 기간만 정하고 있다. 수형 태도가 양호해 뉘우침이 뚜렷하면 무기형이라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한 것이다. 현행법상 무기징역보다 무거운 형벌은 사형이 유일한데,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흉악범죄자에 대한 형 집행의 공백이 생기는 만큼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을 만들어 죄질에 따른 단계적 처벌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법무부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해마다 10명 이상의 무기징역 수형자가 사회로 복귀하고 있다. 법무부의 2023년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1명에 불과하던 무기징역 가석방자는 2018년 40명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16명의 무기징역 수형자가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형제 반대의 주요 근거로 ‘오판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의 경우 오판 사실이 사후에 드러나도 재심이나 감형할 수 있다”며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이 도입되면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실효적인 제도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인 지난달 28일 서영교 민주당 의원도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교화 가능성이 없는 경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 판결을 선고하도록 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범죄 예방하는 ‘사법입원제’, 살인예고 강력 대응 방안도 검토
당정은 폭력성이 높거나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보호자가 아닌, 법원이 판단해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사법입원제도 검토 중이다. 미국과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이미 사법입원제를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12월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흉기 난동으로 사망한 데 이어, 2019년 4월 안인득의 진주 방화·살인사건으로 무고한 시민 5명이 사망하자 사법입원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현재는 복잡한 절차와 법적 분쟁 가능성 등 책임 여부 문제로 본인의 동의가 없는 강제입원은 사실상 어렵다. 가족의 동의하에 본인의 동의 없이 강제로 구급차에 승차시켜 입원시킨 사설 구급업체 관계자는 공동감금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미국 대부분 주(州)와 프랑스, 독일 등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해 ‘사법입원제’를 시행 중이다. 법원은 강제 입원 외에 강제 치료도 명령할 수 있다. 입원이 시급한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경찰이나 담당 의사가 환자를 먼저 입원시킨 후 법원이 사법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영국과 호주 등은 준사법기관인 ‘정신보건심판원’이 정신질환자의 치료 필요성과 위험성 등을 파악해 강제 입원과 치료를 결정한다.
온라인상 살인 예고 게시글에 대해서는 ‘테러’로 간주하는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 중이다. 현행법상 ‘살인 예고’ 글처럼 불특정 피해자에 대한 협박범을 협박죄로 처벌하기 어렵다. 형법 제283조는 “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살해 대상에 대한 특정이 없으면 혐의를 적용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선 국내 테러방지법보다 테러의 개념과 행위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범죄 위협도 테러로 간주하고, 영국은 대중이 공포를 느낄 만한 ‘위협’을 테러로 규정한다. 프랑스는 한발 더 나아가 ‘온라인 감시’에 공권력을 투입한다.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인 최원종이 거부한 ‘머그샷’을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중대범죄 피의자의 머그샷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개정안 10건과 피의자 신상공개에 관한 제정안 2건을 심사 중이다. 법률안마다 공개 대상 범죄나 공개 범위·방법 등에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피의자의 최근 30일 이내 모습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무차별 범죄의 원인이 다양한 상황에서 이를 일률적으로 평가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날 재판에 넘겨진 신림동 흉기난동범 조선은 젊은 남성에 대한 증오범죄 양상을 띠고 있고, 최원종은 정신질환에 대한 약물 투여를 중단한 상황에서 벌인 범죄로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가중처벌한다는 ‘엄벌 만능주의’로는 범죄를 줄이는 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