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0년 발의된 후 3년 만의 일이다.
이번 개정법은 불공정거래에 따른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법제화하고 이 금액의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전까지는 부당이득액의 규모를 정확히 계산해내기 어려워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고도 그에 맞는 처벌은 받지 않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돼오던 가운데 ‘SG증권 발(發) 폭락’ 사태가 터지며 금융 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입법을 통해 부당이득 산정식을 명문화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부당이득은 ‘위반 행위로 얻은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공제해 단순차액을 구하는 방식으로 계산해야 해, 외부 요인에 따른 주가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피의자나 피고인 입장에선 자신이 저지른 행위 이상의 책임을 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늦어도 9월까지는 시행령을 만들 것으로 알려졌는데, 법조계에선 이 시행령으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논란을 최소화 수 있다고 본다.
◇대법원 판례로 존재하던 ‘단순차액 계산식’ 법제화
자본시장법상 부당이득이란 ‘위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위험과 인과 관계가 인정되는 이익’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부당이득 액수에 따라 형벌을 가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부당이득액은 죄의 혐의를 구성하는 법적 요건이며,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불공정거래에 따른 부당이익은 정확히 계산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횡령이나 배임, 뇌물은 금액을 특정할 수 있으나 주가는 경쟁 매매 과정 중 형성되며 원인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산정 불능’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났고 검찰이 가압류했던 돈을 다시 돌려주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금융감독원 가이드라인과 판례로만 존재했던 부당이익 산정식을 법적으로 명문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단순차액 계산 방식은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2010년 대법원 판례 등에는 “통상적인 경우 위반 행위와 관련된 거래로 인한 총수입에서 그 거래를 위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을 산정하는 방법으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다만 단순차액 계산 방식이 법적인 원칙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과 대검찰청 부당이득 산정기준 법제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을 지낸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부당이익 상정을 떠받치는 세 가지 원칙으로 ‘죄형균형, 책임주의, 인과관계’를 꼽았다.
그중 책임주의 원칙은 ‘형벌은 책임에 기초하고 그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우리 사법부는 이 책임주의 원칙을 근거로 부당이익을 엄격하게 판단해왔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위반 행위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는 변동요인에 의한 주가 상승분까지 고려해 법정형의 가중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위반 행위자의 책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라며 “이는 전체 형벌 체계상 현저히 균형을 잃은 것이고 비례의 원칙 혹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위법 행위로 얻은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빼는 단순한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계산하다 보면 이 같은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자기 행위의 결과로 볼 수 없는 부분까지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만약 불공정거래 세력이 개입해 특정 종목의 주가가 10% 올랐는데, 그날 하필 주가지수도 대폭 올랐다면 이 종목의 주가가 급등한 게 정말 불공정거래 때문인지 아니면 증시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또 다른 가정적 사례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주가조작 세력이 관여해 특정 종목 주가가 10% 올랐고 이를 본 일반 투자자들이 추격매수해 10% 더 올랐다면, 세력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판단하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수익률 상한선 설정 등 해답 아냐…법규 잠탈도 고려해야
금융당국은 단순차액 계산 방식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안 원안에 조항을 넣었었다. 당초 금융당국이 제시했던 개정안 제44조의2에는 “위반 행위를 한 자가 제3자의 개입, 그밖의 외부적 요인에 따른 가격 변동분을 소명하는 경우에는 차액(총수입-총비용)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돼있었다. 부과 가능한 과징금의 최대치가 ‘단순차액’이라면, 여기서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가격 변동분을 빼야 정확한 과징금 액수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3자의 개입 여부를 검사가 입증하지 않는 건 ‘입증책임의 전환’이 될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의 의견이 있었고, 해당 조항은 삭제됐다. 부당이득액은 기본적으로 범죄 구성 요건이기 때문에 우리 형사소송법 상 검사가 입증 책임을 진다. 결국 그 바람에 과징금 감경에 관한 기준이 빠진 채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금융위는 이르면 9월쯤 하위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부당이익 계산 방식도 시행령에 포함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 변호사는 “부당이익 산정 기준이 법제화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보다는 하부 산정 기준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며 “제3의 원인이 개입됐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규정할지, 다양한 유형의 원인들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규정을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부당이익 산정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단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규범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유무상증자, 감자, 호재성 계약 등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너무 많으며 주가가 떨어지면 작전세력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를 모두 통제하는 시행령을 만들 수는 없다”며 “그보다는 불공정거래와 피해의 실질적 인과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가르는 방향과 원칙만 제시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종목의 수익률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도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 경우 시세조종 세력이 법 규정의 잠탈을 시도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가 상승률이 5% 이상일 때만 더 들여다보겠다는 식으로 명문화하면, 세력은 의도적으로 주가를 4.99%까지만 끌어올릴 수도 있다.
또 만약 제3의 원인이 개입된 후 명목상 이득액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면, 시세조종 세력이 자신이 지은 죄보다 더 가벼운 처벌을 받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불공정거래를 통해 100만원을 벌었는데 이후 주가가 80만원으로 하락했다고 가정해보자. 피고인의 범죄 행위로 100만원의 수입이 생겼음에도, 20만원(100만원-80만원)에 대한 책임은 면하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 적정한 국가 형벌권 행사가 저해된다는 문제가 있다.
◇프랑스는 ‘범죄자 동거인 재산 증식 이유’ 스스로 소명해야
해외의 사례에서 참고할 만한 답을 얻을 수는 없을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위반행위와 인과적으로 연결된 이득에 대해 합리적 추정을 제시하고 피고가 그 비합리성을 입증하는 식으로 부당이득 반환 금액을 산정한다. 다만 SEC의 ‘패널티’는 범죄 액수를 가중처벌 요소로 보는 우리 형사소송법과 다르다. 부당이익 금액이 범죄구성요건이 되는 체계에서는 입증 책임이 원칙으로 검사에게 있다.
프랑스에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김 변호사는 “프랑스의 형사 처벌 규정 중에는 범죄자와 생활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재산 증식 이유를 소명하지 못하면 처벌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다”며 “사실상 형사 책임 영역에서 입증 책임을 전환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입증 책임 전환까지는 어렵더라도, 우리도 자본시장에서의 주가 형성 특성을 감안해 인과관계를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서 활용 중인 부당이득 산출 계량 모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계적 방법을 활용하기 때문에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이용하든, 검사가 이용하든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