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큰 고비를 넘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또다시 금융 리스크의 뇌관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인 둔촌주공아파트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7500억원 대출 보증으로 가까스로 기사회생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는 듯 했지만, 이제는 미분양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시공사들이 사업에서 잇달아 발을 빼며 곳곳에서 디폴트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주택통계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5359가구로 전월보다 7211가구(10.6%) 늘었다. 정부가 위험선으로 언급했던 6만2000가구를 두 달 연속 넘어섰으며, 미분양 주택이 10% 넘게 증가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 화우 본사에서 홍정석 변호사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시 긴축의 고삐를 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지금, 부동산PF 시장의 앞날은 어떨까. 금융감독원까지 채권자인 금융사들을 향해 대출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하는 등 공개적으로 경고에 나선 만큼, 잠재적 리스크와 법적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화우 본사에서 홍정석 변호사(변호사시험 1회)를 만나 부동산PF 시장의 향방과 법률적 리스크 및 대응책에 대해 들어봤다. 홍 변호사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 강원도의 법률 자문을 맡은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공정거래위원회 할부거래과장을 지낸 그는 현재 ‘화우 GRC센터’를 이끌며 법제 컨설팅과 행정 소송 등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울산 동구 일산동 주상복합 건설 시공사로 참여했던 대우건설이 연대보증을 섰던 후순위 브릿지론 440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며 시공권을 반납한 일이 있었다. 대체 시공사를 찾지 못한다면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할 수 있다. 부동산PF의 문제가 유동성에서 시공사나 조합과 시행사 간 갈등으로 전이되고 있다고 봐야 할까.

“갑과 을이 뒤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과거에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조합과의 관계에서 시공사가 ‘을’의 위치에 있었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며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가 역전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브릿지론의 구조를 잘 살펴보면, 총 1000억원 중 후순위 대출이 거의 절반인 440억원 규모였고 이에 대해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보증을 섰다. 시공사 입장에선 사업 수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업을 계속 진행했다간 공사비 1600억원도 못 받게 생겼으니 대위변제 책임을 지고 발을 뺀 것이다. 고물가 때문에 공사비가 몇 배씩 올랐고 특히 지방은 신축 아파트들이 줄줄이 미분양을 겪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빨리 손을 털고 나가야 한다는 위기 의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은 나중에 후순위 권리를 행사해 공매 처분을 하면 된다. 작년 회계 기준으로 대손 처리도 다 해놓은 상황이니 부담도 덜할 것이다.”

-시공사의 중도 하차가 잇따를 것으로 보는지. 이 경우 시행사에는 어떤 선택지가 있나.

“대우건설처럼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무리하게 후순위채에 보증을 섰던 시공사들은 고민이 커질 것이다. 특히 미분양날 것이 뻔한 사업지에서는 건설사들이 계속 시공권을 유지할 만한 이유가 별로 없다. 그렇게 되면 PF를 만들 때 정확하게 실사하거나 가치 평가를 하지 않았던 곳들은 무너질 수 있다.

그러면 시행사는 새 시공사를 구해야 되는데, 현 상황에 대체 시공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를 지어서 땅값이 올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토지담보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현실적인 최선의 선택지는 공매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땅의 가치를 최대한 높여서 팔 방법을 강구하거나 개발을 늦추면서 용도를 변경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대신 상가나 주택형 공장을 올리는 방법으로, 욕심내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게 최선이다. 지금까지는 다들 사업 규모를 키우려다 보니 브릿지론과 본PF 규모가 커졌던 것이다.”

-둔촌주공 사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제2, 제3의 둔촌주공 사태가 터질 수도 있는지.

“작년부터 금리가 너무 많이 오르는 바람에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핫한’ 상품이었던 둔촌주공의 부동산PF 조차 만기 연장에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을 해줘서 위기를 넘겼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동산PF의 정상적인 연장 과정은 아니었다. 다른 금융기관들이 받거나 롤오버(만기 연장)를 하는 게 정상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나마 둔촌주공은 상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정부가 급한 불을 꺼줬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사업지의 부동산PF는 부실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나라가 연내 기준금리를 1~2회 더 인상한다고 가정하면 한 번은 더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법적 예방책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둔촌주공 같은 우량 자산의 경우는 괜찮다는 건가.

“아무리 우량한 사업지도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 만약 제2의 둔촌주공 사태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그 때는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도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금리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계속 롤오버를 한다고 해도 부담이 크다.

우량 사업장의 경우 땅의 가치가 높으니 향후 분양해서 얼마든지 대출을 청산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대주단의 입장은 다르다. ‘청산 가치가 크니 기다려달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당장 EOD를 선언할 수도 있다.”

-금융사가 EOD를 선언하면 채무자인 시공사는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가.

“회생 혹은 파산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전에 보증을 서서 돈을 추가로 융통한다든지 손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엑시트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분위기다. 물론 자금 보충 의무를 이행하고 유치권을 행사한다면 돈을 회수할 수는 있지만 회생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회생 절차에 돌입해 법원이 선임한 관리자에 맡기는 게 최선이다.”

-회생이나 파산 절차에 돌입하면 대주단과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을텐데, 법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까.

“법원의 회생·파산 관리자가 개입하게 되면 대주단은 PF 청산 전까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다. 익스포져가 큰 증권사의 경우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은 부동산PF를 실행할 때부터 대주단이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시공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특약을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계약 해제를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 해지권을 바로 행사할 수 있느냐가 첫번째 쟁점이 될 수 있다.

두번째로는, 회생으로 넘어갈 경우 관리인의 미이행 쌍무계약(회생 절차가 개시될 때 양 당사자의 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않은 계약)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법원의 관리자가 지금까지 맺은 계약 중 완결되지 않은 것들을 모두 해지하고 다시 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시멘트 공급 계약을 맺은 회사가 단가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다고 판단되면, 해당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회사와 새로 계약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PF 대주단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경우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부동산PF를 실행하는 단계에서 설정한 ‘유치권 행사 포기’ 약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 대체 시공사를 선정하는 경우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곤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공사 재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스1

-모든 법적 문제가 회생·파산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건가.

“대부분 그렇다. 부동산PF의 부실에 따른 후속 처리는 결국 이를 청산하거나 해산해서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눠 갖는 일 아닌가. 때문에 대출 실행 당시 계약서에 포함된 특약 사항에서 분쟁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계약 내용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현 상황이 계약 당시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 조항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통 부동산PF 대출 계약은 대주단과 시행사 중 어느 쪽에 유리한지.

“신탁사를 통해 완벽하게 계약했다고 가정하면, 일반적으로 대주단에 유리한 조항이 많다. 그러나 이른바 ‘떼법’이나 ‘버티기’ 전략이 개입된다면 시행사들이 무조건 유리하다.”

-대주단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나.

“특약 사항을 많이 만들어 공증을 받고, 법적으로 바로 집행이 가능할 정도의 수단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PF 계약서들을 보면 현장 실사도 하지 않고 공증도 건너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건 생각도 안 하고 시행사나 시공사만 탓하며 소비자들에게는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금융 기관이 많더라.”

-미리 법적 대응책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먼저 부동산PF의 ‘부실의 징후’를 신속하게 파악해야 한다. 시공사들이 하도급 업체들에 대한 납품 대금 등을 늦게 지급하거나 할 경우, 그런 시그널을 대주단에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을 때 강원도의 법률 자문을 맡은 경험이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나.

“세간에서 많이들 오해하는 내용인데, 사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돈을 갚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설령 갚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도 이런 문제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발언은 법적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 강원도가 회생을 결정했던 이유는 잘못된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였다. 전 정부에서 레고랜드코리아와 계약한 내용을 살펴보면, 토지를 100년 간 무상으로 임대하기로 했으며 8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었다. 800억원을 무상으로 주면 배임이 될 수 있으니 레고랜드에 있는 놀이기구의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조건을 걸었는데, 이 놀이기구들은 등기를 칠 수도 없는 자산이다.

회생 절차에 돌입하면 이런 계약들을 해지할 수 있다. 또 그 당시와 비교해 땅 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땅을 팔아 돈을 갚을 수 있게 된다. 강원도에서 회생을 결정한 것은 그런 목적 때문이지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대주단에서는 이를 EOD 사유로 봤지만, 강원도가 돈을 갚아야만 하는 구조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적어도 EOD 선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고랜드PF와 일반적인 부동산PF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일반적인 부동산PF는 시공사-대주-시행사-신탁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때 약정된다. 이런 구조에서 EOD가 선언되면 시공사 교체가 최우선으로 이뤄지고, 그것도 안 되면 EOD가 발생해 대주 책임이 된다. 그런데 레고랜드의 경우 시공사가 없다. 시행사(중도개발공사), 대주단(유동화 회사 아이원제일차의 ABCP를 산 증권사들), 지급보증사(강원도)만 존재한다.

일반적인 PF는 시공사가 위험해질 시 지급보증사도 위험에 빠지는 구조지만, 레고랜드PF의 경우 지급보증사와 시행사가 다르며 지급보증사가 우량하다. 레고랜드의 경우 시행사가 회생하겠다는 건 M&A를 통해서 다른 사업자에게 넘기겠다는 취지였는데, 금융사들은 일반적인 PF 구조 안에서 ‘시공사가 망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동산PF 시장의 실태를 면밀히 점검하고 금융업권별 및 공동의 대주단 협약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향후 금융당국이 부동산PF의 가이드라인을 강화한다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부동산PF를 일으킬 당시 내부적으로 컴플라이언스를 철저히 준수했는지, 실사나 가치 평가를 엄격하게 하고 심사위원회에서 제대로 결정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기준을 강화한다면 부동산PF 시장은 위축될 수도 있다. 다만, ‘옥석가리기’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사업성이 뛰어난 지역에서는 PF가 오히려 더 활성화할 수 있는 반면, 사업성이 좋지 않고 부실 위험이 큰 사업장은 이율이 올라 사업 진행이 잘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