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후발 경쟁업체가 내 상품을 무단 도용했다면? 상품 개발 아이디어 구상부터 완제품 출시까지 쏟아부은 투자와 노력, 그에 따른 성과는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해 보상 받아야 할까. 게다가 해당 상품을 미처 제때 출원하지 못하고 출시해 디자인권·실용신안권 등이 모두 무효가 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면 어디에 기대를 걸어야 할까.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은 당초 민법상 손해배상의 영역에서 불법행위로 인정되던 부분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내용으로 전격 도입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시장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산업 분야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특정한 유형의 ‘지적 산출물’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에 발맞춰 개정돼 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 이러한 부정경쟁방지법의 취지를 살려 중소기업의 창작물을 보호하는 내용의 판결이 나왔다. 저작권 보호 등과 관련해 정보가 부족하거나 상대적으로 인지가 덜 되어 있는 중소기업들에게 부정경쟁방지법은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판결의 의의가 있다.
◇예외적 청구로 인정받은 ‘상품형태 모방’
‘주얼리 클립 컨셉’의 차량용 방향제 원조 업체인 오센트(법무법인 지평 대리)는 2014년부터 차량용 방향제 제품 등을 제조·판매한 개인사업자로, 2019년에 사업 일체를 남편 회사에 포괄적으로 양수하면서 공동대표 체제가 됐다. 피고(법무법인 유한 대리)는 2017년 5월 설립된 회사로 방향제 및 화장품 제조, 도소매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개인사업자다.
오센트는 당시 납작한 원통형의 형상에 에폭시 소재의 매끄러운 광택 처리가 된, 전체적으로 ‘주얼리 느낌’이 나는 클립형 차량용 방향제(Oh, Scent!·사진 왼쪽)를 출시하면서 매출이 오르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원통형 뚜껑을 자석을 이용해 열고 닫을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하면서, 방향제 제품을 교체(리필)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입소문이 난 상태였다. 자석을 이용해 본체가 아닌 방향제만 바꿔 사용할 수 있도록 경제성을 살린 제품은 해당 제품이 업계 최초였다.
문제는 피고가 생귄(Sanguine·사진 오른쪽)이라는 유사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촉발됐다. 이에 오센트는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오센트측은 주위적(주된) 청구로 부정경쟁방지법 제2호 1항 ‘파목’(성과 도용)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후발업체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첫 눈에 보더라도 표면 위 영어 알파벳만 다르고 외형과 외관이 매우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무단 도용했다는 취지였다.
만약 파목 위반이 인정되면 기간의 제한 없이 디자인권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오센트측은 동시에 예비적 청구로 동법 같은 항 ‘자목’(상품형태 모방)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타인이 제작한 상품의 형태를 모방한 상품을 양도·대여 또는 이를 위한 전시를 하거나 수입·수출하는 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목은 예외 조항으로 ‘3년 규정’이 들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보호를 받아도 3년까지만 받을 수 있다.
재판부는 예비적 청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주위적 청구는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서 오센트 제품이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후발업체가 상품을 모방한 사실은 인정했다.
지평은 법정에서 직접 차량용 방향제 상품을 들고 나와 상품의 형태와 질감 등 외적 특성을 비교해 설명하고, 소비자들의 인지도 등을 증명하기 위해 블로그 댓글 등 증거를 모아 제출했다. 특히 과거 후발업체측에서 오센트측에 라이선스 협상 시도를 했었다는 점을 재판부에 피력하면서 “상대측도 결국 이 상품의 디자인이 누구나 쓸 수 있는 통상적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주효하게 먹혔다.
사건을 대리한 허종(변호사시험 1회)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디자인권으로도, 실용신안권으로도 보호를 못 받는 상황에서 자목을 적용해도 3년의 제한 기간이 있다”면서 “보호기간이 끝난 상품을 만약 파목으로 보호하게 되면 기존의 상품 형태 보호를 위한 제도를 무시하고 판사가 자의적으로 보호기간을 더 부여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판사들이 파목 침해 행위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낀다”면서 “변호사로서 최대한 성과도용(파목)도 주장했지만 확률상 형태 모방(자목)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부정경쟁방지법, 창작자 의욕 살려야”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디자인권이 무효되고 실용신안권 등록이 거절된 상태에서도 상품 형태로서의 법적 보호 가치를 인정받는 등 부정경쟁방지법의 본래 취지를 살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리지널리티(독창성)를 법적으로 보호해줘야 창작 의욕을 꾸준히 고취시킬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쉽게 권리가 없다고 판결해버리면 창작자들은 매우 허탈할 수 밖에 없다.
실제 오센트는 모방제품으로 고초를 겪은 이후, 코로나 사태로 중국 관광객들이 급격히 줄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성창익(연수원 24기) 지평 변호사는 “오센트측이 해당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직접 드로잉을 하고 광택 처리를 신경써서 하는 등 모든 과정에 공을 들였다”면서 “젊은 기업인들의 상품 개발에 대한 철학을 법적·정책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식 재산의 형태나 양태가 다양화하는 등 기존의 지식재산권 등록 제도만으로 보호하기 어려운 ‘지적 산출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경쟁방지법상 구체적인 지식재산의 범주나 형태도 새로 추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명인의 성명이나 초상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퍼블리시티권 조항도 최근 부정경쟁방지법 범주에 들어왔다. 또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유의미하게 가공·조합한 데이터를 보호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성 변호사는 “기존의 산업재산권 등록 제도로는 보호받기 어려운 양태의 지적 산출물들을 소위 ‘누구나 다 그냥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하면 창작자 입장에선 창작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동법 일반조항으로 전부 담아내려면 남용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