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합수단) 출범에 따라 금융·증권 조직을 재정비한 대형 로펌들이 이제는 조세 분야의 덩치도 키우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검찰 수사권 축소에 대한 대응으로, 검찰이 금융·증권, 조세 분야에 무게를 두면서 로펌들도 이에 발맞춰 시장 선점에 힘쓰는 것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형 로펌들은 각각 조세와 형사 조직을 합쳐 ‘조세형사 전문대응팀(전문팀)’ 신설을 공식화했다. 일부 로펌은 전문팀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조세 분야 업무를 계속하면서도 신설 시기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펌들 간 전문 인력을 데려오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금융·증권, 조세’ 檢 수사 강화·시장변화 등 원인
우선 로펌들이 경제 분야 관련 대응팀을 만드는 건 ‘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부는 현재 민간의 자율성을 중시하면서도 공정 경쟁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에 발맞춰 검찰도 금융·증권, 조세, 공정거래 등 민생과 경제가 연관된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관련 수사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의 대응 변화’도 전문팀 신설의 이유로 꼽힌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검찰 단계에서 형사사건 수사가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 합수단을 신설했고, ‘조세범죄 합동수사단’ 발족도 예고하는 등 수사에 고삐를 죄겠다고 강조하면서 법률 시장에서도 수요가 커진 것이다.
‘조세 사건의 특성’도 전문팀 신설과 맥을 같이 한다.
조세 사건은 국세청 조사부터 시작된다. 국세청 조사 단계에서는 세무사나 회계사들이 보통 담당하는데, 막상 검찰 수사단계에서 변호사들이 선임됐을때 사건 대응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전영준(사법연수원 30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국세청 조사부터 검찰 수사·재판까지 큰 흐름을 아는 전문 인력이 대응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세 사건의 경우 처벌 뿐만 아니라 과징금 등 행정 제재도 뒤따르거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이 시작돼 국세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조세와 형사 전문가들의 협업이 절대적인 분야로 꼽힌다. 이정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29기)는 “효율적으로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협업이 필수”라며 “협업 가능한 전문팀에서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했다.
검찰의 기조 변화와 맞물려 로펌은 금융·증권, 조세, 공정거래 분야를 강화해 왔다. 이때 영입한 ‘금융통’ ‘특수통’인 검찰 출신들이 전문팀 신설에 도움이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영입한 분들 모두 조세 등 형사사건 전반에 큰 전문성을 갖고 있어 로펌 입장에서 즉각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치열한 영입전 치른 대형 로펌들, 앞다퉈 강화
로펌 간 전문 인력 영입도 치열하다. 검찰 정기인사 이후 사직행렬이 이어질 당시 대형 로펌들은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정 분야의 최고 실력자를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법무법인 세종으로 자리를 옮긴 백제흠(20기) 대표변호사다. 한 채용 담당 변호사는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인력은 즉시 전력감”이라며 “사직하기 전에 물밑 접촉으로 영입을 확정하는 게 다반사”라고 전했다.
조세 명가로 꼽히는 율촌은 지난 3일 조세형사대응센터를 설립했다. 김경수(17기) 변호사가 이끄는 이 센터는 ‘초기수사대응팀’과 조세·특수·공정거래 등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검찰 출신 전문가들, 율촌 금융자산 규제·수사대응센터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운영될 예정이다. 율촌은 국세청 조사 단계부터 변호사들이 즉각 대응에 나선다.
세종도 지난 4일 ‘조세형사수사 대응센터’를 발족했다. 이 센터는 압수수색과 포렌식, 조사 과정 참여 등 초기부터 검찰 수사까지 종합적으로 대응에 나선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 출신으로, 인천지검 근무 당시 관세사건도 전담한 이정환(29기) 변호사와 조세법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백제흠(20기) 대표변호사가 공동으로 센터를 이끈다.
법무법인 화우도 조세포탈과 역외탈세 사건 등에 대한 대응을 위해 ‘조세형사대응 TF’를 꾸렸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부장 출신 이선봉(27기) 변호사 등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법무법인 광장은 기존 조세형사팀 인원을 2배 이상 늘리면서 확대·개편했다. 김성환(29기)·전준철(31기) 변호사가 공동 팀장이다. 이들 팀장은 각각 법원과 검찰에서 조세 관련 전문가로 꼽혔다.
김앤장은 기존에 있는 전문가들이 사건별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사건의 유형에 따라 기존 전문 인력으로 맞춤형 팀을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전문가를 보강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존 조세 관련 팀을 확대·개편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조만간 출범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