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에 초대형 펀드 사기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등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수조원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소수를 위한 고위험·고수익 투자 상품인 사모펀드에 개인 투자자들이 몰린 것은 판매사가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판매해서다.
지난 2019년 1조7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국내 1위 사모펀드 운영사 라임자산운용(라임) 펀드 사기 사건도 마찬가지다. 라임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는 2015년 사모펀드 규제 완화 이후 금융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 자산운용사의 도덕적 해이, 판매사들의 수수료 욕심 등 구조적 문제가 불러온 결과다. 실제 라임은 안전 자산을 기초로 한다는 운용사의 설명과 달리 복잡한 상품 구조, 부실 채권 편입, 검증 없는 판매사의 묻지마 판매 등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졌다.
투자자들은 퇴직금, 노후 자금, 주택 자금 등 일생의 자산을 볼모로 잡힌 채 수년간 기약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7월 라임 펀드를 판매한 대신증권이 피해자들에게 최대 80%에 달하는 투자금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조정위의 결정이 나오자 소송을 준비하던 피해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사기로 인한 계약 취소가 아닌 이상 투자금 전액을 보상받기 어려운 재판보다 눈앞에 보이는 과실이 더욱 달게 보여서다. 당시 금감원은 “사기 판매라면 계약 취소 결정이 내려지지만, 이번에는 불완전 판매 등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실제 법원은 2000억원의 라임 펀드를 판매한 대신증권 반포 WM센터의 장모 전 센터장에 대해 사기가 아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만을 적용했다.
판매사를 상대로 최초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법무법인 우리 김정철(사법연수원 35기) 대표변호사는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주기로 했다. 금감원의 분쟁 조정을 받아들이면 소송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의뢰인들에게 “첫 소송인 만큼 승소를 통해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자”고 설득했다. 선행 소송인 재판에서 승리하면 이후에 진행될 다른 소송에서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피해자 투자금 전액 반환하라”…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 첫 판결
라임은 모자(母子)펀드 구조를 이용했다. 모자펀드는 일반 투자자의 돈을 모은 자펀드가 모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자펀드는 주식, 채권 등에 직접 투자하는 대신 모펀드에 돈을 투입하고, 모펀드가 투자금을 운용해 내는 수익을 나눠 갖는다.
라임은 가입과 환매가 언제든 가능한 개방형과 가입 이후 만기까지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펀드를 모두 운용했다. 환매란 펀드에 묶인 돈을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하고 자산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 것이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에게 환매할 돈이 없는 상황을 환매 중단이라고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라임이 환매를 중단한 펀드는 모펀드 4개, 자펀드 173개다. 개인 4035명과 법인 581개사가 총 1조6679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대신증권은 반포WM센터를 주축으로 라임 자펀드 상품을 팔았는데, 미상환액이 1800억원 이상이었다. 방송인 김한석씨와 아나운서 이재용씨 등 대신증권을 통해 라임 펀드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 4명은 판매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냈다. 중요한 선행 소송인 만큼 대신증권 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김씨 등 피해자들을 대리한 우리는 대신증권 장 전 센터장이 펀드의 수익성과 위험성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고지하거나 중요 사항을 고지하지 않아 착오를 일으켜 펀드 투자 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법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나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따라 매매계약을 취소하니 펀드 가입 대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문성관)는 지난 4월 28일 김씨 등 라임 펀드 투자자들이 대신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신증권이 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손실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고객들의 투자 성향을 ‘공격투자형’으로 변경한 점 등을 이유로 ‘사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증권사를 상대로 제기한 라임 사태 최초의 민사 소송으로, 대신증권은 대형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해 방대한 쟁점을 내세웠다”며 “다른 피해자에게 이번 소송의 결과가 직접적으로 미치는 사건이기 때문에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신증권도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 상품은 본질적으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고, 투자자들은 자기 책임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잘 익은 사과로 포장된 썩은 사과… 환불은 누가 해야 하나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이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민사소송은 원고가 입증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한데, 펀드 계약과 관련한 중요 서류는 모두 금융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어서다. 라임 펀드 피해자들이 확보한 증거 자료는 입금 내역과 펀드 설명 자료가 전부였다. 때문에 우리는 2020년 2월 서울남부지검에 대신증권과 장 전 센터장을 고소했다.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확보한 증거와 형사기록을 민사소송에 사용할 계획에서다.
우리는 자본시장법 178조 적용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해당 조항은 부정한 수단 등을 사용해 금융투자상품 부정거래 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전까지는 해당 조항을 적용해 금융사를 기소한 사례가 없었다. 우리는 남부지검에 수차례 방문해 해외 사례와 법리적 의견을 설명했고, 결국 검찰은 지난해 1월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적용해 대신증권을 기소했다. 장 전 센터장도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민사 소송에서 대신증권의 대리를 맡은 김앤장은 크게 세 가지 쟁점을 들고 나왔다. 김앤장은 먼저 대신증권을 부동산 중개사로 비유하며 ‘매매 계약은 매도인과 매수인 둘이 맺는 것이지, 중개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건 아니다’ ‘계약을 취소해도 중개인이 계약금을 돌려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라임과 투자자 사이의 문제일 뿐이지 판매사의 책임은 없다는 취지다.
우리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에서 하자가 발생하면 환불은 어디에 하느냐는 논리로 반격했다. 예를 들어 과수원(라임)과 대형마트(대신증권)가 위탁 계약을 맺고 사과를 공급한다. 마트는 최상품 사과라고 광고했고, 소비자(투자자)는 마트의 설명을 믿고 사과 상자를 구매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상자를 뜯어보니 썩은 사과가 나온다면 마트에서 환불(계약 취소)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에 김앤장은 라임 펀드가 ‘블라인드 펀드’라는 점을 들며 단순히 펀드를 판매만 하는 대신증권은 부실의 징후를 알지 못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자신들은 대략적으로 신용등급이 높고, 전환사채(CB)에 투자되는 것만 알뿐 구체적인 투자처까지는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확보한 검찰의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대신증권이 라임 펀드의 투자 대상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했다. 김 변호사는 “대신증권 반포 WM센터 직원들이 라임 펀드 투자 대상 기업에 공시가 뜨기 전 먼저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들이 미공개 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한 것으로 볼 때 라임 펀드는 블라인드 펀드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재판부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앤장은 부당이득액을 줄이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사기 취소로 계약이 취소된다고 해도 대신증권이 얻은 이득액은 수수료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아서 수수료만 떼고 라임으로 보낸 것이기 때문에 수수료만 돌려주면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투자자와 계약을 맺은 것은 대신증권이고, 라임과 대신증권의 계약은 내부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돈은 원칙적으로 대신증권 계좌로 전부 들어가고, 수탁은행을 거쳐 라임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대신증권이 부당이득 반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대신증권의 펀드 판매를 사기로 인한 계약이라고 판단했다. 이전에 착오를 이유로 수익 증권의 매매 계약이 취소된 사례(대법원 2019다226005·항공 펀드 사건)는 있었지만, 사기를 이유로 계약 취소가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법상 사기가 인정되려면 범행의 고의와 위법적 기망 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상대방의 착오가 발생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자기 책임이 중시되는 펀드 투자에 있어 손실 책임을 판매자에 돌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금융·증권 사건은 투자자가 불법성을 모두 증명해야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 심지어 대형로펌을 내세운 골리앗을 상대해야 하는 힘든 싸움”이라며 “증권사나 은행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투자자가 승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설사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의 비율이 낮아져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무법인 우리의 라임 펀드 사건 첫 승소는 대한민국 금융 역사상 최초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이번 소송의 결과가 라임 피해자들에게 작은 위로와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우리=우리는 ‘원고 소송’ 분야를 선도하는 로펌이다. 특히 김정철 대표변호사는 다수의 금융·증권 사건에서 기업이나 금융기관 등의 불완전 판매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을 대리하며 차별화된 전문성을 축적했다. 그는 지난 2012년 LIG건설 기업어음(CP) 사기 사건에서 최초로 60% 배상 판결을 받아낸 것을 계기로 피해자 대리를 시작했다. 이후 이숨투자자문의 1300억원대 투자 사기 사건에서 피해자 3000명을 대리해 사건을 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