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등 시장 불황 속에서도 국내 10대 로펌들이 3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가운데, 법무법인 태평양과 광장이 2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로펌 순위는 기업 사건 수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로펌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는 매출액 집계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14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대형 로펌들은 조(兆) 단위 인수합병(M&A)과 인공지능(AI)·메타버스 등 신사업 진출, 기업 규제 등에 힘입어 예년보다 높은 성장세를 나타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로펌 중 부동의 1위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다.
법률사무소 형태로 운영 중인 김앤장은 정확한 실적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작년에 1조2000억원 수준의 매출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법무법인은 현행법에 따라 계열사를 둘 수 없다. 따라서 유한책임회사 형태의 특허법인 등을 새로 설립한다. 때문에 로펌 매출 순위 2위 자리를 두고 태평양과 광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다.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액 기준으로는 광장이 3658억원으로 2위, 태평양이 3623억원으로 3위인 반면 해외법인과 특허법인 등 수익을 포함한 기준으로는 3857억원의 매출을 올린 태평양이 2위를 차지하게 된다.
태평양과 광장은 개별 로펌의 매출액만 집계하는 방식의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액 기준 방식을 택할 것인지, 특허법인과 해외법인 등의 매출도 포함할 것인지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후자는 일반 기업을 기준으로 예로 들면 지주회사(모회사)와 종속회사(자회사) 실적을 묶어 연결 기준으로 매출액을 집계하는 방식이다.
광장은 국세청 부가세 신고액 기준으로 매출액을 집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광장 관계자는 “법률상 법무법인과 특허법인은 전혀 별개의 법인이고, 지배종속 관계가 아닌 단순 제휴 관계일 뿐이며, 회계적으로도 출자나 이익 공유 등의 관계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지배종속 관계나 이익 공유 등의 관계를 회계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맞다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태평양은 현재 국내 로펌이 대형화하고 법률서비스의 영역을 해외로 확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해외법인과 특허법인 등의 매출도 포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태평양 관계자는 “김앤장의 경우 특허 출원 및 등록을 담당하는 변리사가 200여명 수준이고, 특허 매출만 3000억~40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특허법인이 별도로 없어 전부 김앤장의 실적으로 잡힌다”며 “전문성 강화를 위해 별도로 법인을 설립한 다른 로펌들의 매출도 포함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과거부터 로펌 간 순위 경쟁은 치열하게 벌어졌다.
로펌 시장 초기에는 소속 변호사 수로 로펌 순위를 매겼다. 2015년쯤부터 국세청 부가세 신고액 기준으로 매출액을 따져 줄을 세웠다.
본격적으로 로펌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사무소나 법인 설립이 잦아졌다. 해외에서 거둬들인 수익도 총 매출액에 합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선도적으로 해외로 진출해 수익을 내는 로펌의 경우엔 순위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재화나 용역은 국내에 신고할 의무가 없어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액에 잡히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로펌의 대형화와 글로벌화에 맞춰 매출액을 집계하는 새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입장과 “관행에 따라 국세청 부가세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 변호사는 “법률서비스 분야 무역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로펌들이 자문 등을 통해 외국 고객으로부터 벌어 들인 수익이 1조원대에 달한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하겠다면 새로운 스탠더드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율촌은 해외법인에서 50억원(2021년 2월~2022년 1월)의 수입을 올리며 총 278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세종은 2701억원, 화우는 2155억원, 지평은 1092억원의 총 매출을 기록했다. 대륙아주는 특허·관세법인 매출을 포함해 7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각에선 변호사 수로 산정한 1인당 매출액을 기준으로 생산성을 평가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인당 매출액이 가장 높은 곳은 김앤장(13억7100만원)이다. 태평양은 1인당 8억3700만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율촌 7억3700만원, 화우 6억8400만원, 광장 6억8200만원, 세종 5억9600만원 등의 순이다.
다만 이는 국내변호사 수로만 계산한 매출액으로 외국변호사, 전문위원과 고문, 세무사·회계사 등도 포함해야 실질적인 성장률을 파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