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변호사 업무를 시작할 때는, 소위 잘나가는 전관 출신 변호사도 아니고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도 아니고 남자 변호사도 아니었죠. 그런 제가 이런 자리에서 인사드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형로펌 사상 첫 비(非)서울대 법대 출신의 40대 여성 대표변호사가 탄생했다. 기존의 관행들을 모두 깬 파격적인 인사다. 보수적인 로펌 업계에서는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던진 ‘신선한 충격’으로 회자되고 있다. 젊은 변호사들의 인력 유출로 각 로펌들이 깊은 고민에 빠진 가운데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이정란 변호사(41·사법연수원 37기)를 필두로 새로운 도약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로펌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이 대표를 지난 4일 강남구 역삼동 대륙아주 사무실에서 만났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로펌 대륙아주에서 대형로펌 사상 첫 40대 여성 대표 변호사인 이정란 변호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 3년 만에 대표가 됐다.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부터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2년 화우를 거쳐 201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지난달 에쿼티 파트너(Equity Partner·로펌의 주주격) 회의를 통해 대표로 선임됐다. 그동안 주로 공정거래와 기업 관련 소송을 주로 담당했다. 대륙아주는 공동대표 5인 체제로 운영된다. 정성태 전 대표변호사의 바통을 이어받게 돼 감회가 새롭다. 무엇보다 젊은 변호사들과 시니어 변호사들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산업 트렌드에 발맞춘 해결책을 내놓는 로펌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 ‘최초’의 수식어가 붙은 파격적인 인사였다.

“대륙아주가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고 대응 속도도 빠른 로펌이라는 걸 보여준다. ‘양성평등’, ‘열린 기회’, ‘변화와 도약’ 등 경영진의 철학이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는 대륙아주가 10대 로펌에 속해 있는 정도지만, 앞으로 탑티어(일류)로 도약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19년부터 마케팅촐괄본부 소속 간사단으로 활동하면서 법조 시장의 변화에 따른 로펌의 대응 전략을 고민해왔다. 주니어 변호사들, 시니어 변호사들 입장에서 각각 어떤 게 필요한지, 이들을 끌고 가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 ‘00학번(1981년생)’이다.

“외부에서는 만 40세의 젊은 경영인이라고 보지만, 조직 내부에서 보면 기성세대와 90년대생들 사이에 놓인 ‘낀대’(끼어버린 세대)다. 우리 세대가 속으로만 생각했던 걸 요즘 세대는 직접 표현한다. 낀대는 요즘 세대 생각을 기성세대에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경험이 다른 세대들이 같은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내부적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이 잘 되는, 이른바 ‘유연한 사람’을 구심점 삼아 후배들의 생각을 융합하는 게 저의 역할이다.”

- 주니어 변호사들의 고민은 뭔가.

“전문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 조직에서 어떻게 클 수 있는지, 5년이나 10년 후에 대한 비전을 궁금해한다. 예전엔 사내 변호사가 기업 내 서브 역할을 해왔다면, 요즘에는 기업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사내 변호사의 위상도 높아졌다. 이외에도 신규 창업 회사에 함께 참여하는 등 이전보다 변호사로 나아갈 수 있는 길들이 다양해졌다. 법인이 존속하려면 인력 유출을 막을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개인의 역량으로 사건을 모두 수임하고 책임져야 했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법인 차원에서 사건을 수임하고 고객도 함께 확보해 로펌과 변호사가 함께 나아가는 방향을 고심해야 할 때라고 본다.”

- ‘프랜차이즈 스타’를 키우는 데 관심이 많다.

“인재를 육성하고 조직이 커지려면 대륙아주에 입사해 전문가로 클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외부에서 전관 출신이나 전문가를 모셔와 팀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새로 들어온 젊은 변호사들이 ‘외부 출신만 고위직에 앉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륙아주가 키운 친구들이 명성을 갖도록 육성하는 것도 로펌이 가진 과제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로펌 대륙아주에서 대형로펌 사상 첫 40대 여성 대표 변호사인 이정란 변호사가 조선비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 여성 변호사들이 더욱 주목하고 있다.

“변호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파트너 변호사가 여성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1~2명 있다고 해도 그마저도 고위 판·검사 출신이었고, 로펌에 입사해 대표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지금은 파트너 변호사들 중에도 여성 변호사가 많다. 내가 가진 강점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전문성과 섬세함 등의 장점을 살리면 강점이 된다. 상대방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성이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 로펌에 도입하고 싶은 시스템이 있나.

“파트너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38살에 아이를 출산했다. 당시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로는 처음으로 출산 휴가를 사용해 4개월 만에 복귀한 경험이 있다. 사건을 수임하면 1~2년 정도 기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가 상당수라서 사실 길게 휴가를 쓸 수 없는 시스템이다. 담당 변호사가 바뀔 경우 클라이언트와의 신뢰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 관련 비용이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로펌은 사실 사람이 전부인 회사다. 저 역시 다섯 살인 아이가 있지만, 친정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일하는 ‘워킹 맘’이다. 여성은 물론 젊은 변호사 등의 입장에서 필수적인 정책이 더 많이 추진돼야 한다. 최소 6개월은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인재 유출을 막는 것이 로펌 운영 방향성에서도 중요하다고 본다.”

- 어떤 로펌을 만들고 싶은가.

“전충렬 대륙아주 고문이 쓴 책 <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박한 조직생활 가이드>에 따르면 성공하는 사람은 ‘끼, 깡, 끈’이 있다고 말했다. 프로 정신과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게 ‘끼’,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근성이 ‘깡’, 네트워크를 가지는 게 ‘끈’이다. 대륙아주 구성원들은 이미 끼를 갖추고 있다. 깡은 업무를 하면서 키워갈 수 있다. 그래서 로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좋은 끈이 되어주자고 강조했다. 대륙아주 출신인 것이 법조 생활의 뒷배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잘 크고 싶은 주니어 변호사들과, 그들을 잘 키우고 싶은 시니어 변호사들의 니즈를 연결해 윈윈하는 회사로 만들도록 하겠다.”

- 올해 대륙아주의 목표는.

“현재 로펌이 즉각적으로 성과를 볼 수 있는 분야를 꼽자면 중대재해처벌법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시장에서는 아직 (로펌들의) 순위가 매겨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 분야를 대륙아주가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 볼 계획이다. 각각의 분야를 합쳐 TF를 만들고 유기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대응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메타버스, NFT(대체불가능토큰)나 블록체인 등 신산업에 관심이 있다. 신산업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문제나 여러 분쟁을 다루고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제도화 이후 어떤 법률문제가 생길지 연구하고 이를 통해 해당 분야를 선점하겠다.”

☞법무법인 대륙아주=법무법인 대륙과 법무법인 아주의 합병으로 2009년 출범한 로펌이다. 당시 아주는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법률 자문을 다수 맡았고, 대륙은 자원 개발사업 자문에 강점을 보였다. 전문 부티크 로펌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한 대륙아주는 단번에 국내 10대 로펌에 진입하면서 대형로펌으로 자리 잡았다. 대륙아주는 최근 기업파산·구조조정·회생 등 도산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쌍용자동차, 동양그룹, 웅진그룹, STX팬오션, 한진해운, 이스타항공 등의 기업회생·파산 관련 자문과 소송 업무를 대륙아주가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