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무기구입국이다. 휴전 상태인 분단국가의 특성상 매년 수십조원을 무기구입에 써야 하는 상황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발표한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에서 5년 동안 무기구입비로 100조원을 쓴다고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 방산업체 입장에선 한국이 ‘큰 손’인 셈이지만, 대우는 그렇지 않았다. 방위산업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방산업체가 오히려 절대 갑이다. 불량 무기를 납품하고도 뒤처리는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한국 정부가 속을 끓일 때도 많다.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부실채권의 절반이 무기 구입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늘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한국 방위사업청은 지난 3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미국 방산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번 승소로 돌려받게 된 돈은 100만달러. 전체 무기구입 예산에 비하면 큰 돈은 아니지만, 몇 년에 걸친 소송 끝에 미국 법원에서 미국 방산업체의 책임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위사업청을 대신해 미국까지 가서 돈을 받아온 건 ‘법무법인 린’이었다.

◇20년전 불량 무기… 소송에만 십수년 걸려

한국 방위사업청은 1999년과 2000년에 미국 방산업체인 파라곤시스템, 얼라이드테크시스템스와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두 곳이지만, 두 회사 모두 존 안(JOHN AHN)이라는 사람이 최대주주로 있었다. 한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 사실상 같은 회사였던 셈이다. 존 안은 무기 판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증을 섰다.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문제는 오래가지 않아 터졌다. 미국에서 건너온 무기가 불량품이었다. 방위사업청은 불량 무기를 판매한 방산업체를 상대로 중재 판정을 얻고, 두 회사의 최대주주인 존 안을 상대로는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불량 무기를 다시 가져가고 무기 대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이었다.

일러스트=정다운

한국 법원에서는 2015년 7월 방위사업청이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이들 방산업체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에도 무기대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이들은 계약서상에 ‘동시이행’ 조건을 내세웠다. 무기구매계약을 할 때는 보통 불량 등 문제가 생기면 대금 반환과 무기 반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동시이행’ 조건을 계약서에 넣는다. 방산업체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불량무기 회수를 늦추면 무기대금 반환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한 뒤 미국 법원으로 갔다. 무기대금 반환이 늦어지고 있으니 보증을 선 방산업체 최대주주가 직접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2016년 11월 시작된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 1심은 무려 3년을 끌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나온 판결이 이상했다. 방위사업청이 받아야 할 돈이 200만달러인데 그중 절반만 인정된 것이다.

◇미국 대형로펌도 못한 미국 법원 설득… 법무법인 린이 해내

방위사업청이 방산업체 최대주주인 존 안에게 받아야 할 돈은 200만달러였다. 미국 방산업체가 한국 법원 판결 이후에도 무기대금 반환을 하지 않으면서 생긴 지연손해금이다.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소송촉진법)’은 판결 선고시 금전채무 불이행에 따른 지연손해금 산정 기준을 정하고 있다. 지금은 법정이율이 달라졌지만 이 사건 판결 선고가 났을 때는 법정이율이 연 20%였다. 연 20%의 법정이율을 적용하면 방위사업청이 돌려받을 돈이 200만달러였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 1심 법원은 2019년 9월 판결을 하면서 200만달러가 아닌 100만달러만 인정했다. 존 안의 주장을 미국 법원이 상당부분 받아들이면서 방위사업청이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존 안은 미국 법원에서 크게 두 가지 부분을 문제삼았다. 우선 자신이 한국 법원에서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의 법정이율이 지나치게 높다고도 했다. 캘리포니아에도 우리 소송촉진법 같은 법률이 있는데 거기서는 법정이율을 10%로 정해놨다. 자신이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했는데 20%의 이자율을 내는 건 너무 과하다는 주장이었다.

국제법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에 캘리포니아 현지 법률을 적용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존 안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미국 1심 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존 안에게 20%의 이자율을 부과한 것이 법이 정해놓은 이자를 부과한 게 아니라 패널티 형식의 세금을 부과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방위사업청은 1심 재판에서 미국 현지 대형로펌을 선임했지만, 잘못된 판결이 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법무법인 린은 이때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 법무법인 린은 방위사업청을 대신해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을 맡았다. 린 국제분쟁팀의 윤현상 미국변호사는 재판부에 ’20% 이자율'이 tax(세금), fine(벌금), penalty(위약금) 같은 성격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는 게 중요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과거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한국 기업과 미국 현지 기업이 진행한 판례를 찾아냈다. 이미 과거에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한국의 ’20% 이자율'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는 걸 제시하면서 200만달러는 한국 정부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이자일 뿐이지, 세금이나 벌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린의 전략은 항소심에서 적중했다. 지난 3월 15일 캘리포니아 항소심 재판부는 린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가 받아야 할 지연손해금이 200만달러가 맞다고 인정했다. 공중에서 사라질 뻔한 국민 세금 100만달러를 돌려받게 된 순간이다.

◇”이 돈이 내 돈”이라는 마음가짐… 승소 이끌어

미국 현지의 대형로펌도 실패한 재판부 설득을 해낸 건 법무법인 린의 ‘국제분쟁팀’이다. 법무법인 린은 중소형 부티크 로펌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6대 로펌을 위협하는 중형 로펌으로 성장했다. 김앤장 등 대형로펌 출신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대형 로펌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현상 법무법인 린 미국변호사.

방위사업청을 대신해 국민 혈세 100만달러를 되찾는데 성공한 린 국제분쟁팀도 마찬가지다. 린의 국제분쟁팀은 김앤장 출신의 김성수 미국변호사와 임혜경 미국변호사, 그리고 맥쿼리자산운용 법무담당 상무를 지낸 윤현상 미국변호사를 중심으로 팀을 이루고 있다. 대형로펌 출신과 현장 출신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게 린의 장점이라고 윤 변호사를 설명했다.

린은 미국 현지 대형로펌도 실패한 미국 법원 설득을 어떻게 성공한 걸까. 이번 소송을 맡았던 윤현상 변호사는 “이 돈 이 내 돈이라는 생각”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변호사 입장에선 아무리 큰 사건을 맡아도 결국에는 의뢰인의 일에 불과하다. 재판에서 지더라도 나에게는 아무런 손실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내가 낸 세금이 달려 있는 문제인 만큼 재판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윤 변호사는 설명했다.

윤 변호사는 “해외 방산업체들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갑질하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미국 현지 파트너 로펌에도 ‘이 돈이 내 돈이라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이번 재판뿐 아니라 통영함을 불러싼 한국 정부와 미국 방산업체 간 소송도 맡고 있다.

현지 로펌과 단발성 계약이 아닌 꾸준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것도 주효했다. 린은 미국을 비롯해 동남아 주요국에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로펌 네트워크가 있다. 많은 로펌이 해외 재판을 할 때, 그때그때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과 달리 린은 미국만 해도 몇 년 째 한 곳의 로펌과만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윤 변호사는 “현지에서 우리를 대신해 재판을 잘 수행해줄 로펌을 찾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낫다”며 “오랜 시간 함께 일을 하면서 현지 로펌도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고, 하나의 로펌처럼 팀워크를 맞춰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