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공립의과대학인 카롤린스카대학 정신과 의사 겸 교수 크리스티안 뤼크(Christian Rück). 자살과 조력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 ‘자살의 언어’를 출간했다. 그는 자살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미국 자살예방재단의 학술 고문이다./ⓒ Martin Stenmark

#상황1 돌아오는 표는 없다

“119죠? 제가 치명적인 독극물을 삼켰는데요. 이젠 죽고 싶지 않아져서 빨리 좀 도와주세요. 제발!”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어디에 계시죠?”

“집이요. 인터넷으로 약물을 주문했어요. 확실히 죽는대서.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요. 제기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세르코딘을 삼키셨다고요?”

“네. 3분 전에 삼켰고, 지금 당장 해독제를 먹으면 살 수 있대요. 더는 죽고 싶지 않아요. (흐느끼며)벌써 몸에 약효가 도는 게 느껴져요.”

“구급차를 보낼게요.”

“빨리요. 전 겨우 스물세 살이에요.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아요.”

“저와 계속 통화하시죠. 이름이 뭔가요?’“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발신자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크리스티안 뤼크 ‘자살의 언어’ 중에서.


목숨을 끊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죽음에 이르게끔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기 위해서는 살고자 하는 본능을 꺾어야 한다. 몸은 펄떡인다. 우리의 모든 조직은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죽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살은 선택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예측하거나 막을 수는 없는 걸까? 자살에 반대하면서도 조력사에 찬성할 수 있나?

스웨덴의 정신과의사인 크리스티안 뤼크가 쓴 책 ‘자살의 언어’를 읽었다. 책에는 자살과 안락사, 조력사라는 실제 상황에 직면한 수많은 사람들, 사건들, 장면들, 관련자들, 이 ‘외로운 죽음’을 둘러싼 논쟁적인 입장들이 숨가쁘게 등장한다.

갈피마다 자살 생존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 죽음을 돕는 의사,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20대 소녀… 삶과 죽음의 경계지에서 서성였던 수많은 사람의 ‘확신’과 ‘주저’의 시간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 정도의 아찔한 이슈를, 이토록 대담하게 충돌시키면서도 문장의 호흡이 사나워지지 않을 수 있다니… 자살의 모국어는 수치심이며, 부국어가 있다면 그건 침묵일 거라는 정신과의사의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2003년부터 2022년까지 19년 동안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10대 자살률이 계속 증가 추세다.

내가 책 출간 전 인터뷰를 위해 PDF파일로 받아보았을 때, 이 책의 가제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죽음’이었다. 출간을 앞두고 제목이 바뀌었다. 언어의 뉘앙스에 따라 전혀 다른 시선의 문이 열릴 수 있어, 중립적인 문패를 달았으리라.

11월 23일은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이다. 전 세계에 매년 80만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지금, 가장 사적이되 가장 사회적인 사건으로 ‘자살의 언어’가 해금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해결되려면 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진통제도 없이 집도해야 하는 전장의 의사처럼, 사력을 다해 생명의 팩트를 전하는 스웨덴 정신과 의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일시 정지 버튼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정지 버튼 대신 일시 정지 버튼을 택했을 거라고 했다.

-책은 ‘고모 리즈가 42세의 일기로 취리히 욕조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로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당시 저는 고작 11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적막함은 기억합니다. 공기가 묵직했죠. 가족끼리는 무척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퍼즐을 풀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무얼 놓쳤는지를 살폈죠.

제가 오늘날 직업적으로 하는 일도 그 퍼즐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정신과의사가 된 이후로 저는 환자 중 누가 자살을 기도할 것이지 예측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자살이란 무엇인가요?

“자살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의도적으로 종결하는 것입니다. 현재 매해 80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전쟁과 살인으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많은 숫자지요. 세 명 중 두 명은 남성이고, 남성의 자살 시도는 대체로 죽음으로 끝납니다”

-수많은 사례를 연구한 선생이 보시기에 자살은 선택인가요?

“저는 자살을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최후의 선택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 정신 질환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고 터널 끝에 빛이 없는 듯할 때, 자살은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죠.”

▲의사로서 그는 환자에게 삶의 의욕이 있는지 혹은 자살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나 우리가 애도하는 죽음은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성격의 것이다.

-환자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습니까?

“20년 전, 저를 찾아온 환자 중 한 명이 저와 면담 후 귀가 중에 자살했습니다. 그 사건을 둘러싸고 어마어마한 슬픔을 겪었어요. 환자를 자살로 잃는 것은 임상의들이 두려워하는 일이지만, 그 가족이 겪었을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저는 죄책감 속에 자문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이후 친인척들을 인터뷰해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정신과적인 부검이 이뤄졌어요.”

-예측해서 막는 것은 불가능한가요?

“정확한 예측은 어렵습니다. 영국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85%는 의사와 마지막으로 접촉했을 자살 위험이 낮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자살 위험이 높다고 분류된 사람 중 다행히 대다수가 죽지 않기도 합니다.

내 고모 리즈도 어떠한 자살 예고장도 남기지 않았어요. 열여섯 살 소년 요한은 갑자기 부모에게 “사랑해요, 감사해요, 전부. 그리고 죄송해요. 더는 못 하겠어요”라는 문자를 보낸 후 갑자기 목숨을 끊었어요. 그 아이는 5시간 전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상점에서 레드불을 샀고 일상적인 계획도 세웠죠.

생존자 인터뷰에 따르면 1/3의 사람들이 대체로 시도 한 시간 전에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이 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살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에 붙들리고, 너무 빠른 시간에 시도가 이뤄져서 다른 사람이 알 겨를이 없었죠. 가족과 친구에게 답을 들을 수 없는 무수한 질문을 남긴 채로요.”

-정신과적 부검을 통하면 단서가 발견되겠지요.

“네. 그래서 예측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아요. 위험 요인은 다양해요. 성별, 자살 기도 경험, 정신 질환, 친인척 중 자살 사망자가 있는지 등등. 술과 약물, 헤어짐, 모욕, 생활고, 극한 갈등이 충동을 부추기죠.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우리는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고 싶어 해요.

사실 자살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니라, 구름 낀 하늘에 벼락 치는 것과 비슷해요. 리즈 고모의 삶은 누가 봐도 힘겨웠고, 요한은 평소에 겁이 없었어요.”

▲뤼크에 따르면 정신병 환자의 자살 권리를 옹호하는 의사일수록 환자가 절망적인 질병상태에 있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양극성 장애를 앓던 케빈 하인즈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그가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배회하고 있을 때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요?

“케빈 하인즈는 어린 시절 여러 위탁가정을 전전했습니다. 입양된 후 운명의 방향이 바뀌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시달렸어요. 그는 뛰어내리기 전, 다리를 배회하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길, 자신에게 말을 걸어 주길, 어쩌면 자신을 멈춰주길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파악하지 못했죠.

그리고 그는 뛰어내렸습니다. 물에 닿기 전에 그렇게 한 걸 후회했다더군요. 그 자신도 놀란 일이지만,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골든게이트 브리지에서 뛰어내린 후 생존한 극소수의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골든게이트브리지에서 뛰어내린 2,000명 중에서 살아남은 자가 극소수인 이유는, 수면에 부딪히는 순간 기절해서 익사하기 때문이다. 케빈은 필사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왜 계속 살아야 하는지 타인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상황2 추락의 순간

다큐멘터리 ‘더 브릿지’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촬영했다. 2024년 글든 브릿지 아래로 떨어져 익사한 사람은 24명이었다. 가볍게 조깅하던 중년 남성은 멈춰서서 전화 통화를 하며 웃다가 갑자기 난간을 넘어 죽음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 젊은 남자는 89분 동안 다리를 서성이다 마치 풀장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한 다이빙을 하듯 몸을 날렸다.

-‘더 브리지’를 본 소감을 말씀해 주시지요.

“누군가가 다리를 따라 조깅하다가 갑자기 펜스를 오르더니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떨어지더군요. 영상은 내내 먼 거리에서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촬영되었습니다. 굉장히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죠. 1년 내내 중단 없이 다리를 촬영하거든요.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은 골든게이트 브리지에 자살 방지 철책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마침내 다리에 안전망이 설치됐어요.”

▲짧게 멈춰서는 것만으로 삶을 선택하게 된다. 다리에 울타리를 치고 위독한 약물을 약국에서 살 수 없도록 하는 것만으로 자살 수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과연 약간의 장애물만으로 죽으려는 의지를 꺾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워싱턴 DC에는 매우 인접한 두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한 다리는 ‘자살 다리’로 유명했는데, 한쪽에 울타리가 설치되자 자살이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어요. 놀라운 건 사람들이 울타리 없는 가까운 다른 다리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거죠.

목숨을 끊으려고 다리를 찾아가지만 마음은 확실히 정하지 못한 겁니다. 자살 경향이 있는 사람도 실제로는 죽고 싶지 않은 거죠. 다만 너무 큰 고통을 받아서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든 거예요. 정신적으로 양가적인 상태인 셈입니다.”

-자살 시도자들이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네요.

“미국의 골든게이트 브릿지에서 뛰어내린 후 생존한 1~2% 사람 중 절반이 뛰어내릴 때 자신이 생존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어요. 자살하는 사람 중에서 정말로 죽고자 하는 사람은 일부일 거로 생각해요. 일시 정지 버튼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정지 버튼 대신 일시 정지 버튼을 택했을 겁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1~2분 정도만이라도 멈춰 세울 수 있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거죠.”

#상황3 죽음왕복편

29세의 나탈리는 안락사를 신청했을 때 남편과 브뤼셀에 살고 있었다. 나탈리는 의사들 앞에서 왜 죽고 싶은지를 설명했고 의사는 환자의 정신적 판단력이 온전한지 살핀 후 신청을 승인했다. 시행일은 반년 뒤로 잡혔다. 나탈리는 부모에게 연락을 끊고 직장을 그만두고 유해한 인간관계도 끊어냈다. 근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어졌다. 남편과 가까운 친구 몇몇만 나탈리의 결정을 알았다.

6개월 후, 나탈리는 안락사 신청을 취소하고 삶을 택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 나탈리는 죽음에 대한 희망을 품으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했다.

▲벨기에 사회는 나탈리에게 죽음의 열쇠를 주었지만, 나탈리는 다시 삶의 길로 돌아왔다.

-안락사를 신청했다 살아온 29살의 나탈리와의 만남은 어땠습니까?

“나탈리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벨기에에서 안락사를 신청해 승인을 받았죠. 그러나 이후 죽을 예정일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삶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더 나은 인간관계를 모색하고 나쁜 관계는 끊어냈죠.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어쨌든 조만간 죽을 테니까 말이죠. 제가 왜 안락사를 취소했느냐고 묻자 그러더군요. 완벽하게 살진 못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분이 더 나아질 나이를 먹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요.

클리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연스레 나이를 먹는 게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이런 경우에 시간은 진정한 우리 편인 듯합니다. 이 인터뷰는 제게 오랜 인상을 남겼어요.”

-또 한 명의 벨기에 소녀 에밀리는 안락사를 신청하고 떠나기 전까지 ‘24세, 죽을 준비가 된’이라는 다큐를 찍었더군요. 의사가 ‘정신과 환자를 죽일 수 있는 조건’은 충격이었습니다.

“그건 매우 어려운 윤리적 문제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존중합니다. 벨기에를 비롯한 소수 국가에서는 정신적 진단을 토대로 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고 에밀리의 사정도 나아졌을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제 책에서 저는 이러한 사건에 연루된 많은 사람, 친척, 의사를 인터뷰했고 이 문제에 대한 관점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지요.”

-삶 쪽에 발을 담근 의사와 죽음을 결정하는 의사는 환자와 질병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다릅니까?

“제 생각에 한 가지 주요 차이점이라면 사람들이 자기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데 대한 믿음의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보건의료 시스템에서는 사람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까요? 이것이 허용된 국가에서 이 문제에 관한 고민과 논란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사그러들었는지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필립 니츠케가 만든 조력사 캡슐 ‘사르코’.

-조력사 분야의 일론 머스크로 알려진 필립 니츠케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그가 만든 자살 기계를 사용하면 의사가 동석할 필요도 없다고요.

“맞습니다. 니츠케는 조력사 부문에 있어 분명 경계를 확장한 사람입니다. 그는 보건의료 시스템의 개입이 전혀 없이도 조력사를 가능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의 최신 발명품은 무척 ‘멋스럽고’ 다소 미래지향적으로 보이는 캡슐인데, 그 안에 들어가 가스를 사용해 삶을 종료할 수 있죠.

‘오징어 게임’에 나올 법한 것처럼 생겼는데 최근에 첫 사용자가 나왔습니다. 58세 미국 여성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스위스에서 이걸 사용해 죽었죠. 그녀의 죽음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니츠케는 조력사를 찬성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도 선동적이며 극단적이라고 비판받고 있어요. 저 또한 이것을 위험한 개발이라고 봅니다. 자살 경향이 있는 개인에게 새로운 죽는 방법을 제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의사들은 죽음을 막으려 하기보다 도우려 할까요?

“안락사가 허용된 국가에서 반드시 안락사를 수행해야 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안락사는 심각하거나 말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이용하지요. 모든 것은 자율성을 보는 관점에 달려있습니다.”

-자살은 전적으로 반대하면서도 조력사에 찬성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지점에서 윤리적 충돌이 발생합니다. 자살을 예방하고 싶지만 동시에 조력사(저는 자살의 한 형태로 간주합니다만)를 허용한다면, 상충하는 두 가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쨌든 네덜란드나 캐나다 같은 곳에서 조력사는 보편화되고 있으며 전체 죽음의 6% 정도를 차지하고 있죠.”

▲안락사 신청자와 그의 부모, 배우자들, 자살 직전 삶을 택한 사람들, 의사들이 들려주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자살의 언어’.

-104세에 조력사를 신청한 오스트리아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데이비드 구달은 스위스로 떠나 클리닉에서 그의 결정을 지지해 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안락사로 삶을 종결했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기자들 앞에서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토대로 한 베토벤 교향곡 4악장을 맑은 목소리로 불렀어요. 자식과 손자들에 둘러싸여 약물을 투여받으며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눈을 감았죠.

그는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지 않았으나 무려 104세였고, 이미 여러 번 자살 실패를 경험했기에 동정을 받았습니다.”

-식물인간에 가까웠던 브룩 홉킨스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브룩 홉킨스는 자전거를 타다 사고로 튕겨 나가 목이 골절됐습니다. 그는 호스를 통해 숨을 쉬고 음식을 섭취하는 채로 5년을 지냈어요. 삶의 질이 낮아졌지만, 휠체어에 앉아 대학에서 문학강의를 계속했어요. 아내와는 침대에 누워 얘기하며 강렬한 친밀감을 유지했습니다.

브룩의 아내는 자살 및 조력사 윤리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한 연구자인 마가렛 페기였습니다. 남편의 사고로 페기는 논문의 윤리를 몸소 직면하게 됐습니다. 사고 5년 뒤 홉킨스는 호흡기를 뗴기를 원했고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고요히 죽어갔어요.

뉴욕타임스가 이들 부부의 인터뷰를 실었을 때, 페기가 남편과 함께 댓글을 읽었던 일화를 제게 들려주었어요. 짧은 댓글은 이러했습니다. “브룩 홉킨스는 결국 자신의 삶을 끝낼 것이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댓글은 브룩이 실제로 자기 삶을 끝내기 불과 몇 주 전에 작성된 것이었다고 해요.”

-제 각자의 사연이 있기에 안락사 신청자 가족의 마음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더 많은 해명은 필요없습니다. 세상을 떠나셔도 좋습니다.” 의사의 오케이 사인을 곁에서 함께 듣는 가족의 심정이란…

“나탈리의 남편 마크가 그러더군요. 모든 것이 너무 일사천리로 매끈하게 진행되서 놀랐다고요. 사랑하는 아내가 안락사를 신청한 동안 남편이 겪어야 했을 공포를 상상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 또한 그 말에 마음이 섬뜩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선생의 책과 이 인터뷰가 자살 관념과 예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조심스럽습니다. 자살 보도가 더 많은 자살로 이어지는 베르테르 효과는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매체에서 자살 사건 보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걸 증명하는 자료가 많습니다. 특히 유명 인사의 경우에는 더더욱요. 상세한 내용은 언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자살에 대해 개방적인 논의도 필요합니다. 금기를 깨고 자살에 대해 더 자주 터놓고 얘기해야죠.”

▲ ‘자살의 언어’는 출간 즉시 스웨덴 사회를 뒤흔들고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Martin Stenmark

스위스는 1977년에 안락사에 관한 국민 투표가 처음 실시했고, 정부, 교회, 의료협회 모두가 조력사에 반대했지만, 대중의 과반수가 조력사에 찬성하는 표를 던져 충격을 안겼다. 스위스는 외국인이 클리닉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다. 대표적인 조력자살 기관인 스위스 EXIT의 도움을 받아 2022년에만 1,125명이 죽음을 맞았다.

반면 스웨덴은 200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살을 없애겠다고 공표했다. 뤼크에 따르면 현재 스위스에서 자살 예방은 지방자치단체의 화두이고 정치적인 우선순위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정신 보건 정책에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사실상 자살 예방은 그 철학적 복잡성에 비하면 비교적 간단하다. 일명 ‘자살 도구’의 접근성을 줄이면 된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생존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나중에 자살로 사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저는 그게 희소식이라고 봅니다. 자살 시도에서 생존한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것이요. 그 사실은 자살 사고가 있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요. 단지 사는 게 너무 고될 따름이라고요.

고통을 겪고 있는 분이라면,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거의 항상 자살 위기는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살아있는 게 유일한 할 일이라고요.

도움을 청하고 기다리면 삶은 다시 밝아질 수 있습니다.”

그 자신, 자살 유가족이자 자살로 환자를 잃은 정신과 의사이기에, 죽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환자들 앞에서 삶의 편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한다고 했다.

▲그가 쓴 ‘자살의 언어’는 현재 북유럽 대표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Martin Stenmark

-선생의 말처럼 ‘내 삶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요?

“네. 제 경우엔 삶에 부침이 있음을 수용하는 게 큰 도움이 되더군요.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요. 어떤 사건은 해일처럼 일어나고 그건 통제 밖의 일이죠. 해결할 수 있다, 없다를 논하지 말고 시간이 흐르고 물살이 잦아지도록 두어야 합니다.”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크리스티안 뤼크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스톡홀름의 한 유명한 자살 다리에서 경찰차와 구조사가 자살하려던 여자를 구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곳은 몇 년 전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어렵게 하는 보호 펜스를 설치했고, 그게 오늘 저녁 한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책에서 만난 노장 의사 루네손의 말이 보호 펜스처럼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80년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타인에게 선하게 대하면 많은 것을 돌려받을 수 있어요. 따스함을 경험할 수 있지요. 80년을 넉넉히 쓰고, 있는 것을 모두 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