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라는 구호가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ake Europe Great Again·MEGA)’를 만들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역설적으로 유럽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수입품 관세 인상과 자국 기업 우대 정책이 미국 주식시장의 하락을 부르는 사이, 유럽연합(EU)은 1300조원 규모의 대규모 재정 확대로 반격에 나섰다. 이에 유럽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타고, 약세가 예상됐던 유로화마저 강세로 돌아섰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낮추는 반면, 유럽 주식에 대한 전망을 일제히 상향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유로·증시 동반 상승

1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럽 대표 주가 지수인 유로스톡스50이 올 들어 18일까지 11% 올랐다. 유로스톡스50은 유로존을 대표하는 50개 주요 기업으로 구성된 주가 지수다.

유로화도 강세다. 유로 대비 달러 환율은 18일 유로당 1.09달러 선을 기록했다. 11일에는 1.09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연초 1.03달러 선에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유로 가치가 높아져 같은 유로로 더 많은 달러를 살 수 있게 됐다는 뜻으로, 유로의 구매력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그래픽=김성규

반면, 미국은 다르다. 미국 대표 주가 지수인 S&P500은 올 들어 18일까지 약 4%가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약진하던 달러는 최근 약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수입품 가격 상승을 초래해 미국 기업의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성규

뉴욕타임스(NYT)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최우선하며 ‘미국 예외주의 시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초기 행보는 미국 주식시장에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1300조원 돈 풀기 나선 EU

유럽 주식시장의 이 같은 반등에는 과감한 재정 확대 정책이 바탕이 되고 있다. 트럼프 집권으로 커지는 관세전쟁과 지정학적 갈등 우려를 재정 확대로 돌파하려는 게 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EU는 최근 국방비 지출 확대를 이유로 최대 8000억유로(약 1270조원) 규모의 재정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또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3% 이하, 60%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는 EU 재정 준칙 적용을 유예하겠다며 ‘국가별 예외 조항’도 언급했다.

지난 18일에는 독일 하원이 5000억유로(약 794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추진할 수 있는 부채 제한 완화 방안을 통과시켰다. 이 방안은 21일 상원 동의를 받고 대통령이 승인하면 확정된다. 이 발표 이후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에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올랐다.

전문가들은 유럽 국가들의 대규모 재정 확대가 경기 부양 기대감을 높이며 유럽 통화와 주식시장의 활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럽 주식 뜬다’ 전망 늘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최근 미국 주식에 대해서는 투자 의견을 낮추는 반면 유럽 주식에 대한 전망을 올리고 있다.

HSBC는 최근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이유로 미국 주식의 투자 등급을 ‘중립’으로 낮췄다. 반면, 유럽 주식에 대한 평가를 ‘비중 축소’에서 ‘비중 확대’로 두 단계 높였다. 시티그룹도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JP모건은 “독일의 재정 완화 계획 등에 힘입어 올해 유로존의 경제성장이 촉진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다른 유로존 국가도 느슨한 재정 정책을 취할 경우 좀 더 강력한 성장을 예상한다”고 했다.

다만, 미국의 관세전쟁이 유럽의 수출 감소와 투자 둔화로 경제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을 1.1%에서 0.9%, 내년 전망치는 1.4%에서 1.2%로 하향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