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 주식을 100주 빌려놨는데(대차 잔고), 이보다 많은 200주를 매도하려고 하자 ‘차입주식 매도 가능한 수량을 초과했습니다’라는 알림창이 떴다. 부족한 만큼을 추가 차입한 뒤에야 공매도 거래가 이뤄졌다. KB증권이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공개한 내부 공매도 전산 시스템이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증권사 등 관계 기관이 공매도 거래 재개를 앞두고 19일 새로 구축한 공매도 전산 시스템을 선보였다. 기관 투자자와 증권사, 거래소로 이어지는 3중의 전산 시스템을 토대로 불법 공매도를 방지하는 것이 골자다.
공매도는 타인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는 것으로, 주가가 떨어질 것을 예상할 때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 기법이다. 흔히 불법 공매도라고 부르는 것은 ‘무차입 공매도’다. 주식을 빌리기 전에 매도한 뒤 나중에 대여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이를 금지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공매도 거래를 수기(手記)로 관리하면서 불법인 무차입 공매도를 잡아내기 어려웠다. 이미 공매도한 뒤 뒤늦게 결제 시점에서 대차 잔고를 맞추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한시적이나마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이에 유관 기관은 매매 시점에 보유한 주식 잔고보다 더 많은 주식을 공매도할 수 없도록 관리 시스템을 마련했다. 실시간으로 매도할 수 있는 대차 잔고를 확인해 무차입 공매도를 원천 차단했다.
이에 앞서 공매도 거래 규모가 10억원 이상이거나 개별 종목의 공매도 잔고가 전체 주식의 0.01%를 넘는 모든 금융기관은 ‘공매도 등록번호’를 발급받아야 한다. 불법 공매도를 방지하는 다층 구조의 체계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공매도 투자자는 거래 내역을 거래소의 ‘공매도 중앙점검 시스템(NSDS)’에 보고해야 한다. 거래소는 NSDS에 공매도 투자자가 보고한 잔고와 실시간으로 매도할 수 있는 잔고를 산정해 비교한다. 이 과정에서 매도할 수 있는 대차 잔고보다 많은 매도 물량을 적발한다. 불법 소지가 포착되면 거래소는 추가로 심층 점검을 진행하고, 불법 공매도로 최종 판단하면 금융당국에 통보해 조사가 이뤄진다.
거래소가 이날 가상으로 만든 무차입 공매도 내역을 입력하자, NSDS의 ‘불법 공매도 실시간 모니터링 현황’에 바로 나타났다. 또 NSDS 내 ‘투자자 잔고 관리시스템 유효성 검증’에서 투자자 보고 내용에 위반 사항이 없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거래소와 기관 투자자, 증권사 등은 모의시장을 운영하며 오는 26일까지 공매도 전산 시스템을 최종 점검 중이다. 박종식 거래소 상무는 “자체 잔고 관리 시스템과 NSDS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면,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해소되고 증시 건전화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오는 31일부터 공매도 거래를 전면 재개할 계획이다. 2023년 11월 공매도 금지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