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가 발행된 주식 중 1%도 안 되는 물량을 매수하겠다는 공시에 주가가 뛰는 사례가 나왔다. 사들이겠다는 주식 수가 워낙 적어 일반 주주가 청약해도 받아들여질 여지가 적은데, 공개매수라는 이유만으로 오른 셈이다. 과거에도 ‘찔끔’ 공개매수는 있었으나 이번처럼 주가 급등을 동반하진 않았다.
작년 하반기 고려아연 주가를 순식간에 200만원대로 끌어올린 단초가 된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가 투자자들에게 막연한 기대감을 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공개매수는 장내거래와 다른 특징이 있으니 차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한 후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차량 공유업체 쏘카(403550)의 최대주주 에스오큐알아이가 지난 14일 공개매수를 하겠다고 공시하자 주가는 장 중 23.15%(1만4210→1만7500원)나 올랐다. 공개매수가로 현재 주가보다 높은 1만7500원을 제시한 덕이다. 에스오큐알아이는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배우자인 황현정씨가 지분 100%를 가진 회사다.
공개매수 공시를 뜯어보면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았다. 에스오큐알아이가 밝힌 공개매수의 목적은 책임 경영을 한층 더 하기 위함인데, 정작 공개매수 물량은 발행된 쏘카 주식의 0.52%(17만1429주)에 불과했다. 에스오큐알아이가 공개매수에 성공해도 지분율은 19.2%에서 19.72%로 소폭 상승한다.
시장에선 이 전 대표가 지난해 제주은행·푸른저축은행·IBK캐피탈로부터 받은 350억원 규모 주식담보대출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을 회피하기 위해 소량임에도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란 의혹이 일었다. 주식이 담보라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이 전 대표에게 추가금을 달라고 하는데, 이런 사태를 막고자 공개매수를 강행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주가 상승이란 결과를 알고 나온 것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찔끔’ 공개매수에도 투자자들이 붙어 주가가 오를 것을 예상했다는 말이 된다. 쏘카 역시 의혹을 부인했다. 쏘카 관계자는 “주가 부양이 목적이었다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수했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도 이번과 같은 찔끔 공개매수가 있었다. 하지만 쏘카처럼 과열된 주가 흐름은 보이지 않았다. 2022년 9월 한화솔루션(009830)은 한화갤러리아·한화첨단소재를 떼어내면서 기존 주주가 팔고 나갈 기회를 주기 위해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목표 수량은 보통주 0.71%, 우선주 0.01%였다.
공개매수가(보통주 기준)는 공개매수 공고일 전날보다 2.62% 높으면서, 최근 1개월 가중산술평균종가보단 1.37% 할인된 수준이었다. 쏘카 만큼 공개매수가가 매력적인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한화솔루션 주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공개매수가 진행된 14거래일간 공개매수가(5만1000원)를 돌파한 건 하루뿐이었다. 주가는 내내 4만원 후반대에 머물렀다.
비슷한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공시와 비교해도 쏘카의 주가 급등은 이례적이다. 가장 최근 3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발표한 회사는 소주와 공업용 에탄올을 생산하는 한국알콜(017890)이다. 공시 다음 날인 이달 12일 이 기업 주가는 3.86% 오르는 데 그쳤다.
국내 증시에서 공개매수란 표현이 개인 투자자에게도 친숙해진 건 작년 9월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면서다. 당시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000670)은 사모펀드 MBK와 손잡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한 공개매수에 나섰다.
66만원이었던 공개매수가는 양측이 대항하기 위한 공개매수를 발표하면서 89만원까지 올랐다. 공개매수가 끝나고도 영풍·MBK와 최 회장 중 어느 한 쪽으로 승기가 확실히 기울지 않자 지난해 말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고려아연 주가는 24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영풍·MBK의 공개매수는 쏘카와 한화솔루션의 공개매수 사이에 발생했다. 몇 달간 고려아연 주가 급등을 지켜본 개인 투자자로선 쏘카의 공개매수 공시에서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투자자가 응모한 주식의 총수가 공개매수자의 최대 매수 예정 수량을 초과하면 투자자는 응모한 주식 전부를 매도할 수는 없다”며 “(공개매수자는) 목표 수량만큼만 안분 비례해서 매수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