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REITs·부동산 투자회사)의 환헤지(Hedge·위험회피) 비율을 자산운용사가 자율로 정할 수 있게 됐다. 환헤지란 환율 변화에 따른 자산 가격 변동에 대비해 환헤지 계약 시점의 환율로 고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기존 상장 리츠 등은 처음 펀드 설정 당시 계약 내용을 고려할 때 현행 환헤지 비율을 유지해야 할 전망이다.

12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관계 당국은 최근 한국리츠협회와 자산운용사들에 투자자 보호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환헤지 비율을 자율에 맡기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리츠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환헤지 정산금 문제가 불거진 뒤 현황 파악에 나선 뒤 업계 자율성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결론 났다”라고 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국내 리츠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할 때 어느 비율까지 환헤지를 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관계 당국이 장기 투자하는 리츠 특성을 고려해 설립 인가 때 환헤지 비율 100%를 권고해 왔을 뿐이다. 업계에선 이를 사실상 의무로 받아들였다. 미래에셋글로벌리츠(396690)를 제외한 상장 리츠 대부분이 리츠 원금의 100%에 달하는 환헤지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한 가운데 환헤지 계약 만기가 줄줄이 돌아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리츠들은 환헤지 계약 만기 때 기준 환율보다 현재 환율이 오른 만큼 계약 상대인 은행 등에 환정산금을 지불해야 한다.

리츠는 현금을 대부분 배당 재원으로 써왔던 만큼 환정산금을 추가로 마련하기 위해 추가로 돈을 빌리거나, 보유 자산 일부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해외 오피스 시장이 부진해 안 그래도 어려웠던 상황에서 환정산금 부담까지 불거지면서 상장 리츠의 경우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최근 3개월 동안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481850) 주가는 23.3% 하락했다. 제이알글로벌리츠(348950)KB스타리츠(432320)는 주가가 각각 13.3%, 7.5% 내렸다.

리츠 설계할 때 환헤지 비율을 100%로 설정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앞으로 환노출 상품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환율 변동성에 영향을 받는 만큼 위험성이 커지지만, 환헤지 비용을 추가 배당 수익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기존 리츠들은 환헤지 비율을 조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매입을 위한 차입 계약 내용 등에도 환헤지 비율이 명기돼 있는데, 이를 바꾸려면 사실상 새로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해관계자가 많아서 기존 리츠의 환헤지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신규 상품들부터 다양성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