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찾은 전남 목포 현대힘스(460930)의 선박 곡블록 제조 공장. 공장에 들어서자 대형 관광버스 2대 길이의 거대한 철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철판의 정체는 선박 곡블록. 영하의 날씨, 차가운 바닷바람에도 용접 헬멧과 방독면으로 무장한 작업자들은 곡블록 제조에 여념이 없었다. 철판 위에 쪼그려 앉은 작업자들의 손길 위로 붉은 불꽃과 강한 흰빛이 교차했다.
용접과 도장을 통해 완성된 곡블록은 선박을 만드는 HD현대삼호와 HD한국조선해양(009540)으로 향한다. 여러 블록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선박이 된다. 곡블록은 선수나 선미 등 선박의 곡면 부분에 들어가는데, 평판 블록보다 높은 제조 기술이 요구된다. 현장에서 만난 최지용 현대힘스 대표는 “하루에 400~450톤(t), 연간 8만7000t가량의 곡블록이 생산된다”고 말했다.
공장 밖을 나오자 완성된 곡블록 너머로 독립형 탱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진 모양과 금속 표면, 아파트 7층 높이의 구조물이 작은 우주선을 연상케 했다. 연간 8700t의 독립형 탱크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독립형 탱크란 액화천연가스(LNG)나 화학 물질 운반선에 사용되는 저장 탱크의 한 종류로 선박 외벽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구조로 지지되는 탱크다.
현대힘스는 과거 탱크 상부만 제작했으나, 하부 제작과 보온·도장까지 공정을 확대했다. 기존 5000t의 독립형 탱크 생산량을 2026년 기준 1만6000t까지 키울 계획이다. 최 대표는 “독립형 탱크는 LNG나 액화석유가스(LPG)같이 극저온·고압 가스를 저장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며 “지금 보이는 탱크도 극저온 환경을 견디는 저온강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 조선업 훈풍 타고 항만 크레인 등 신사업 진출 계획
조선업 훈풍을 타고 역대 최대 실적을 낸 현대힘스는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설명한 독립형 탱크 공정 확대와 더불어 항만 크레인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9월 300억원을 들여 대불산업단지 내 2만8000평(축구장 약 13개 면적)의 대불4공장도 확보했다. 항만 크레인은 항구에서 컨테이너나 화물을 배에 실었다 내리는 초대형 크레인으로 높이가 아파트 20층보다 높다.
항만 크레인 제작의 경우 HD현대삼호와의 협력을 계획 중이다. 현재 HD현대삼호는 현대힘스의 대불 4공장을 임대한 뒤 협력사를 통해 부산 신항에 공급될 항만 크레인을 제작 중이다. 향후 HD현대삼호의 제작 물량 일부를 현대힘스가 담당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대힘스는 1년에 7~10대 수준의 항만 크레인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 항만 크레인 시장은 중국의 ZPMC사가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중국의 안보 갈등 심화로 중국산 항만 크레인이 ‘스파이 도구’로 지목되면서 시장에 균열이 생겼다. 미국이 중국산 크레인 대체를 위해 향후 5년간 200억 달러(26조5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기회를 엿보게 됐다.
국내 항만공사들도 항만 크레인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HJ중공업(097230)과 HD현대삼호는 부산 신항에 들어갈 크레인을 제작하기로 해 지난해 7월 각각 1870억원, 179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HD현대삼호의 경우 광양항 항만에 들어갈 크레인도 제작하기로 해 2060억원 규모의 수주를 따냈다. 최 대표는 “항만 크레인 사업 매출이 향후 현대힘스 전체 매출의 10~15%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힘스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18% 증가한 2232억원, 영업이익은 49% 늘어난 215억원, 당기순이익은 63.7% 증가한 166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현 HD한국조선해양(009540)) 아래에서 2008년 설립된 현대힘스는 2019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제이앤PE에 매각됐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042660))을 인수하기 위해 현대힘스를 팔아야 했다. 자사 계열 기자재 업체가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물량까지 독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