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고객 랩어카운트(랩)·특정금전신탁(신탁) 계좌를 돌려막다가 적발된 증권사 9곳에 대한 징계 수위를 약 2년 만에 확정했다. 9개 증권사는 기관경고와 기관주의, 총 290억원의 과태료 제재를 받는다.
금융위원회는 19일 제3차 정례회의를 열고 9개 증권사(하나·KB·한국투자·NH투자·SK·교보·유진투자·미래에셋·유안타증권)의 채권형 랩‧신탁 운용 관련 위법사항에 대한 기관 제재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SK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증권사에는 기관경고, SK증권에는 기관주의를 의결했다. 다만 교보증권에 대해서는 사모펀드 신규 설정 관련 업무 일부정지 1개월 제재를 내렸다. 기관 제재는 기관주의-기관경고-시정명령-영업정지-등록·인가 취소 등 5단계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기관주의만 경징계에 해당하고, 기관경고부터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교보증권에 대해 “다른 증권사와 달리 랩·신탁 돌려막기에 펀드까지 동원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불건전 영업 행위를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게 해 더 무거운 제재가 불가피했다”고 했다.
또 금융위는 9개 증권사에 대해 총 289억7200만원의 과태료 부과 조치를 결정했다. (☞ ‘[단독] 교보증권, ‘랩·신탁 돌려막기’ 일부 영업정지 중징계... 다른 곳은 수위 낮아져' 기사 참고)
랩·신탁은 증권사가 일대일 계약을 통해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여러 고객 자산을 같은 기초자산에 투자하는 펀드와 달리 랩·신탁은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자금 수요에 따라 개별 운용하는 구조다. 만기는 통상 3~6개월로 길지 않다. 법인 고객이 단기자금을 굴릴 때 종종 랩·신탁을 찾는 이유다.
앞서 금감원은 2023년 5월 9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에 관한 집중 점검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이 특정 고객의 수익률을 보장하고자 다른 고객 계좌로 손실을 돌려막거나 회사 고유자금으로 손실 일부를 보전해 준 사실을 발견하고 지난 2년 동안 제재 절차를 밟아왔다.
금융위는 “채권·기업어음(CP)의 불법 자전‧연계거래를 통해 고객 재산 간 손익을 이전하거나 증권사 고유재산으로 고객 손실을 보전하는 행위는 건전한 자본시장 거래 질서와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훼손하는 중대 위규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다만 금융위는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 등 당시 시장 상황의 특수성, 증권업계의 시장 안정화 기여 및 리스크 관리 강화 등 재발방지 노력, 과태료 부과 규모 등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또 금감원 검사 이전에 관련 법규 등에 따라 실시한 자체 내부감사, 손실 고객에 대한 사적화해 등 선제적 사후수습 노력도 함께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금융위는 “이번 위반 행위는 실적배당 상품인 랩‧신탁을 확정금리형 상품처럼 판매‧운용하고 환매 시 원금과 수익을 보장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관련 임직원의 준법의식 확립뿐 아니라 리스크‧준법‧감사 등 관리부서에 의한 감시와 견제가 강화될 수 있도록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회사의 전사적인 내부통제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