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이달 조각투자 제도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증권사들은 오히려 토큰증권발행(STO) 유관 부서 몸집을 줄이고 나섰다. 블록체인 기반의 STO는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발행할 수 있는데, 법제화 과정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는 STO 사업 부서를 축소하고 나섰다. 관련 법안 통과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인력·인프라 등 유지 비용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KB증권은 STO 사업 부서를 디지털 관련 업무 부서 산하로 옮기며 소속 직원들이 다른 업무를 병행하도록 했다. 삼성증권 역시 STO 관련 태스크포스(TF)를 팀 조직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은 지난 2023년 금융위원회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STO 발행·유통을 허용하자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앞다퉈 채비에 나섰다. 하지만 초기 형성된 기대와 달리 관련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법제화가 늦어지면서 STO 기업들은 입에 풀칠만 하는 상황”이라며 “금융 당국이 제도화 방침을 밝혔지만, 법제화 작업이 언제든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도 상존한다”고 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금융위원회는 이달 3일 조각투자 혁신금융서비스(샌드박스) 제도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오는 6월 16일 시행된다.

현행법상 조각투자 상품은 투자계약증권 기반으로만 발행할 수 있다.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기반으로는 샌드박스 지정 업체만 발행할 수 있었다. 금융당국은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방식의 조각투자 상품 발행을 허용하는 투자중개업 인가를 신설할 예정이다. 임시로 자산유동화법을 법적 근거로 활용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반적으로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발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사, 루센트블록, 펀블, 뮤직카우 등의 조각투자사들이 이번 시행령 개정안의 적용을 받는다.

금융당국은 수익증권 유통플랫폼도 투자중개업 인가 단위를 신설해 올해 9월 말까지 제도화할 계획이다. 제도화 이후에 다양한 조각투자 상품이 취급되면 일반 투자자의 접근성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STO는 국회에서 전자증권법이 먼저 개정돼야 한다. 이번에 금융위가 발표한 제도화 방안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STO 기업들은 법제화가 늦어지면서 유일한 자금 조달 수단인 신규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STO 업체의 경우 추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최근 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이 대거 이탈했다.

벤처캐피털(VC) 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까지 STO 기업들을 여러 번 검토하긴 했지만, (법제화 관련해) 여러 갑론을박이 있어 더 이상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찬식 펀블 대표가 지난달 10일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5’에서 아드리앵 괴미 유로SX CSO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펀블 제공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한 STO 기업 중 해외로 눈을 돌린 곳도 있다. STO 기반 디지털자산 운용 플랫폼 ‘피스’(PICE)를 운영하는 바이셀스탠다드는 올해 일본과 싱가포르 시장에 진출한다. 현재 명품시계 등 럭셔리 아이템 관련 토큰상품과 K팝·웹툰·콘텐츠를 묶은 ‘K-에셋’ 토큰상품 구상을 마치고 출시 일정을 현지 토큰증권 거래소와 조율 중이다. 일본에서 하반기 상품을 출시하는 게 목표다. 실물자산 기반의 토큰증권 플랫폼을 운영하는 펀블도 지난달 프랑스의 토큰 거래 플랫폼인 유로SX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조각투자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이르면 올해 상반기 ‘STO 제도화 패키지 법안’(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작년 11월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