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중 나온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충격파가 31일 국내 증시에도 닥쳤다.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를 비롯한 반도체 업종은 약세를 보였고, 반대로 NAVER(035420), 카카오(035720) 등 AI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기업 주가는 급등했다.

증권사들은 글로벌 테크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딥시크 출현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나섰다. 온도 차는 있지만, 딥시크의 등장이 기존 세계 AI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기존 빅테크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엔비디아와 딥시크의 로고 자료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SK하이닉스 주식은 31일 오전 10시 52분 코스피시장에서 20만원에 거래됐다. 전 거래일보다 주가가 9.5%(2만1000원) 하락했다. 장 중 20만원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같은 시각 삼성전자 주가도 2.42%(1300원) 내린 5만2400원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에는 AI 산업의 경쟁력이 수백조원을 투자해야 구축할 수 있는 AI 인프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딥시크를 통해 막대한 투자 없이 낮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AI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AI 인프라 구축을 주도하던 엔비디아 주가가 폭락했고 31일 국내 주식시장이 열리자 반도체 관련주가 하락했다.

반면 네이버와 카카오 주가는 급등했다. 카카오는 전 거래일보다 8%, 네이버 주가는 5% 안팎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딥시크의 가성비가 이들 종목의 주가를 움직인 배경으로 꼽힌다. 딥시크는 AI 모델 ‘R1’을 558만달러를 들여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타 플랫폼스가 최신 AI 모델인 라마(Llama)3에 투입한 훈련 비용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딥시크는 또 R1을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한 H800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그 성능이 오픈AI의 o1 모델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엔비디아의 고성능·고비용 반도체 수요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졌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약세로 이어졌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이후 HBM 수요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한국 메모리 반도체 공급 업체의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 평가 가치)에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이 딥시크 사례를 계기로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를 강화하면 국내 반도체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800, H20 등의 판매도 앞으로 모두 금지하면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HBM을 공급 중인 한국 D램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이라고 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AI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설 연휴 실적을 발표한 메타 플랫폼스와 마이크로소프트도 올해 AI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여전히 인공 일반 지능(AGI) 달성을 위한 기술 진보가 필요하고, 빅 테크의 경쟁 구도도 지속될 것”이라며 “시장 선점을 위한 CAPEX 확대 기조 속에서 반도체와 하드웨어에 우호적 환경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한편 딥시크의 등장으로 AI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주가가 급등한 배경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딥시크 사태가 AI 사이클을 훼손한 것은 아니다”라며 “단기적으로 ‘엔비디아 등 AI 하드웨어 업체의 성장 독주’에서 ‘AI 비용 하락에 따른 AI 소프트웨어 업체의 수익성 개선’이라는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로 이동하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기술 혁신 과정에서 나타났던 업종별 흐름을 볼 때 소프트웨어 기업이 주도주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테크 버블과 클라우드 사이클 1~2년 차 때는 항상 하드웨어와 반도체가 강했다”며 “이후 기술 단위가격이 파괴적으로 하락하면서 수요가 확산하고 이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가 주도권을 잡는 모습이 반복됐다”고 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도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는 중에도 IBM과 SAP는 강세를 보였고, 레딧은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관건은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도 AI 관련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지다.

홍콩계 크레디리요네증권(CLSA)은 “딥시크 등장으로 광범위한 AI 활용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AI 기반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과 비교해 한국 인터넷 기업이 경쟁력이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