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직역(職域) 수호 기 싸움을 벌여온 회계업계와 세무업계 간 업무영역 갈등이 최근 다시 심화하고 있다. 특히 회계사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 공인회계사를 세무 전문가로 규정하는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데다, 대법원이 회계사 고유 업무로 여겨져 온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서 검사 업무마저 세무사에게 길을 열어주자 회계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29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회계사에게만 허용되던 ‘민간위탁 기관의 사업비 결산서 검사’를 세무사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달 25일 대법원(주심 서경환 대법관)이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를 대상으로 제기한 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의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청구를 기각하면서다.

개정된 조례안은 회계사만 할 수 있던 민간위탁 수탁기관의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새롭게 정의해 세무사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2019년 5월 제출돼 2021년 12월 의결됐으나 금융위원회의 재의요구 지시에 따라 서울시장이 재의요구를 했다.

금융위와 회계업계는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서 검사 업무’가 공인회계사법에서 회계사의 직무로 정한 ‘감사 및 증명 업무’에 해당해 세무사에게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공인회계사법 제50조에 따르면 공인회계사만 회계에 관한 감사·증명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서 검사권을 부여하는 서울시 조례는 즉시 효력이 발효됐다. 세무사가 서울시를 비롯해 추후 전국 지자체에서 민간위탁 보조금 사업비 검사를 수행할 길이 열린 것이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원래 각 지자체 담당 부서에서 했던 업무인데 회계사가 회계감사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했다.

회계업계에서는 이런 판례가 이어지면 다른 업무도 점차 세무사에게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세무사는 회계 기록 검증 업무를 하는 자격사가 아니기에 회계사법에서 정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서도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전문직 인력은 자꾸 늘다 보니 먹거리를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세무사 업계가) 회계업계를 넘보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도 이례적으로 “비영리부문의 회계 투명성이 크게 후퇴할 수 있어 유감과 함께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했다. 한공회는 서울시 조례가 원상회복(결산서에 대한 회계감사)되도록 시민 청원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 적극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지방재정 투명성 확보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투입되는 민간위탁사무의 수탁기관 결산서는 반드시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 역시 동시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2021년 5월 17일 세무사신문 1면 캡처. /세무사신문 캡처

회계사들을 들끓게 한 일은 작년 말에도 있었다. 공인회계사를 세무 전문가로 규정하는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앞서 2020년 공인회계사 출신인 유동수·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공인회계사는 회계, 감사, 세무 등에 관한 전문가로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라는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세무사 업계는 “회계사를 세무 전문가로 명시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세무사법 개정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무사 유사 명칭 사용을 금지하고 세무사를 세무 전문가로 명시하고 있는 현행 세무사법과 충돌되며 다른 직역의 전문 영역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두 업계는 3여 년간 앞다퉈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을 찾아 각각 개정안의 당위성과 부당성을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는 결국 세무사 업계의 손을 들었다. 회계사를 전문가로 명시하고 있는 공인회계사법 일부개정법률안 ‘제1조의2(공인회계사의 사명)’ 조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수정 가결한 것이다. 이후 지난해 12월 수정된 개정안은 정무위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 별도로 세무사 공식 자격증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와 미국·일본 등 극히 일부“라면서 ”회계사 1, 2차 시험에 세법개론과 세법 과목이 들어가 있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