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조금 이르게 배당주의 계절이 시작됐다. 올여름 증시를 휘저은 테마주에 질린 투자자들이 배당주 펀드로 눈길을 돌리면서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배당주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투자자들이 평소보다 빨리 배당주에 관심을 갖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리스크가 더해져 연말·연초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배당주에 자금을 넣어두는 게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개월간 운용액 10억원 이상 국내 배당주 펀드 1055개의 설정액은 8조7458억원으로 299억원 늘었다. 최근 한 달간 설정액이 100억원 넘게 증가한 펀드도 5개다. 개인 투자자가 개별 종목의 배당 수익률(1주당 주식 가격 대비 배당금의 비율)을 일일이 따져 투자하기 어려운만큼, 전문가들은 배당 수익률이 높은 종목을 모아 놓은 배당주 펀드 투자를 추천한다.
이 중 ‘미래에셋TIGER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ETF)’ 설정액이 1개월간 630억원 늘었다. 이 ETF는 6월 16일 설정 후 운용액이 1289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신한SOL미국배당다우존스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 설정액은 320억원, ‘한국투자ACE미국배당다우존스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 설정액은 200억원 증가했다. 운용규모가 1000억원 아래인 ‘신한SOL미국배당다우존스증권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주식](H)’와 ‘미래에셋TIGER미국배당+3%프리미엄다우존스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에도 각각 120억원, 105억원이 몰렸다.
수익률도 순항 중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된 14개 고배당 ETF의 최근 한 달 평균 상승률은 4.69%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1.41%)을 웃돌았다.
이 중 국내 대표 고배당 ETF인 ‘키움KOSEF고배당 ETF’는 8.70% 올랐다. 이달 20일 기준 이 ETF는 JB금융지주, DGB금융지주, 기업은행, BNK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NH투자증권, DB손해보험, KB금융, 삼성화재 등 은행·증권·보험주를 대거 담고 있다. ‘한화ARIRANG고배당주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과 ‘NH-AmundiHANARO고배당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도 각각 8%가량 상승했다.
배당주를 추천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증시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배당주에 투자해 5%를 웃도는 배당을 확정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증시 흐름을 살피는 게 좋다고 말한다. 특히 내년 4월 10일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연말~연초 증시가 들쑥날쑥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배당주가 안정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전통적 고배당주인 금융·통신 업종에 외국인과 기관 투자금이 몰린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월 들어 20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금융 업종을 1479억원어치, 통신 업종을 868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기관 투자자도 금융 업종을 708억원어치, 통신업종을 333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증시도 부진하고, 미국도 금리 불확실성으로 단기 투자할 만한 종목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면서 “이럴 땐 배당주에 투자해 최소 수익을 확정한 후, 총선까지 증시 흐름을 보면서 상황을 살피는 것도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김인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내 주식시장은 ‘배당주 플레이’가 활발해진 모습”이라면서 “국제 유가가 90달러를 넘어서면서 고금리 장기화 경계심이 다시 부각됐고, 단기적인 시장 불확실성이 팽배해지면서 배당주 매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배당 수익률이 높아도 펀드에 담긴 개별 종목의 주가 자체가 떨어질 경우 펀드 수익률이 함께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