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화장품 업체 코스나인(082660)은 지난 19일, 14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지난 3월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으로부터 연 9.5% 금리로 각각 72억5000만원, 62억5000만원을 빌렸는데, 6월까지 갚아야 하는 이 채무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당초 코스나인은 한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CB를 발행하겠다고 했지만, 며칠 뒤 CB 발행 대상을 국내 저축은행들로 변경한다고 알렸다. 이 중에는 기존 채권자인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포함됐다. 상상인저축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다시 상상인저축은행으로부터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상상인저축은행이 기존 대출보다 나은 수익처를 찾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상상인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코스나인이 이번 CB를 발행함으로써 회사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 동시에 CB에 투자해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CB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인데, 코스나인이 발행한 이번 CB의 표면 이자율은 3%, 만기이자율은 9%이고, 내년 5월 이후에는 1022원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전환 청구 시점이 도래했을 때 주가가 전환가액보다 높다면 CB 투자자는 그 차액만큼 수익을 낸다. 또 이 CB에는 경기도 김포에 있는 코스나인 토지와 건물이 담보로 잡혔다. 담보 금액은 채권 원금의 130%에 달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 CB 물량이 전량 주식으로 전환되면 16.3%에 달해 현재 최대주주(바이오라인밸류인베스트먼트투자조합 및 특수관계인 15.95%)보다 지분율이 높아진다”며 “상상인저축은행은 이번 CB 투자로 수익성뿐 아니라 채권의 상환 가능성도 크게 높였다”라고 평가했다.

경기도 성남시 상상인저축은행 본사. /연합뉴스

상상인(038540) 계열사 상상인저축은행이 코스닥 상장사의 CB를 대거 매입하고 나섰다. CB로 자금을 조달하는 코스닥 상장사의 전주(錢主)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인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는 데다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CB 투자로 부실 메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상상인저축은행은 몇 년 전에도 과도한 CB 투자로 한 차례 몸살을 겪었던 터라, CB 투자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앞서 상상인저축은행은 에이프로젠(007460)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발행하는 CB 200억원 규모를 인수했다. 내년 4월부터 1532원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제약 업체 셀루메드(049180)가 연구개발비를 조달하겠다는 명목으로 발행한 CB 역시 50억원 규모로 인수했다.

섬유를 생산하는 성안도 마찬가지다. 성안은 지난 1월 운영자금·채무상환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상상인저축은행을 상대로 80억원의 CB를 발행했다. CB 발행을 통해 마련한 80억원 중 40억원은 채무상환에 쓰였는데, 이 채무는 상상인그룹 증권사 상상인증권(001290)에서 차입한 금액이었다. 앞서 상상인저축은행은 제이스코홀딩스(023440)스튜디오산타클로스(204630) 등이 발행한 CB에도 투자했다.

업계에서는 상상인저축은행이 부동산 PF 부실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CB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부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상상인저축은행이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CB 공장’을 자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대형 저축은행 중 가장 먼저 올해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한 상상인저축은행의 영업손실은 230억원, 순손실은 175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의 영업손실은 116억원, 순손실은 88억원이었다. 고정이하여신비율과 연체율이 오르는 등 건전성 지표도 악화되고 있다.

상상인저축은행은 과거 CB 투자 과정에서 잡음이 컸다. 과거 상상인저축은행은 저축은행업권에서 가장 큰 규모로 CB 담보대출을 취급했는데,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는 지난 2019년, 상상인저축은행 불법 대출 혐의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 징계를 받았다. 당시 상상인저축은행은 과징금 처분을 받았는데,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이달 18일 대법원이 징계를 확정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유 대표는 대주주가 CB를 저가에 취득하도록 공매를 진행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하락시킨 혐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상상인은 개별 차주들에게 최대 8억원인 신용공여 한도를 초과해 381억7000만원을 불법 대출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CB 시장의 ‘큰 손’이던 증권사들이 다소 주춤하는 사이 저축은행이 다시 ‘CB 공장’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사들은 상장사들이 찍어내는 CB를 인수해 수수료와 투자 수익을 동시에 챙겼지만, 최근에는 주춤한 상태다. CB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던 메리츠증권의 경우, 올해 초 최희문 부회장이 CB 투자 자제를 언급하면서 이전보다 투자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진투자증권은 지난해 CB 직접 투자 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자 관련 조직을 축소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