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원 출신인 김모씨는 2019년 퇴직하자마자 퇴직금 대부분을 삼성증권 주식을 매수하는 데 썼다. 삼성증권 배당률이 연 4% 이상으로 높은 편이고, 보수적인 삼성증권 특성상 예상치 못했던 손실도 적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의 기대는 빗나갔다. 2020년 과도한 파생상품 투자(ELS 운용 손실)로 큰 손해를 입더니, 2023년 현재는 예상보다 많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로 불안감을 키우고 있어서다. 김씨는 “조금 더 지켜보다가 주식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산관리 명가(名家)를 자처하며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보수적이던 삼성증권(016360)이 최근 2년 새 PF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핵심 수익원이던 브로커리지(중개) 수익이 위축되고 저금리 환경에서 자산 운용 수익도 줄어들자 사업장 부실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지출 없이 일정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부동산 PF 사업을 대거 확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2일 증권업계와 한국신용평가 등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미래·NH·한국·삼성·KB·하나·메리츠·신한·키움 등 자산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 중 부동산 PF 대출 규모(익스포저·브릿지론 포함)가 가장 많은 증권사는 메리츠증권이었고, 그 다음이 삼성증권이었다. 메리츠증권의 PF 대출 규모는 4조5000억원, 삼성증권은 3조5000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메리츠증권은 전통적으로 PF 사업 규모가 큰 증권사다. 2010년대 중반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보이기 이전부터 PF를 주요 사업으로 육성해 왔다. 메리츠증권의 자기 자본 대비 PF 익스포저 비중 역시 88%로, 대형 증권사 중 가장 높다.
업계의 이목이 쏠린 것은 예상보다 큰 삼성증권의 PF 규모였다. 삼성증권의 PF 대출 규모는 3조5000억원으로, 자기 자본 대비 PF 익스포저 비중 역시 61%로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의 PF 규모는 2조5000억원 수준, NH투자증권의 경우 2조원이 채 되지 않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안정적인 수익을 강조하던 삼성증권이 뒤늦게 부동산 PF 시장에서 사업 영역을 확대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삼성증권 다른 사업본부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PF 규모가 이슈가 되면서 찾아봤다가 깜짝 놀랐다”면서 “원래 삼성증권은 그룹 눈치 때문에라도 위험성이 높은 사업은 하지 않아 왔는데,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IB 부문에서 보수적인 운영 행태를 보였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높은 수익을 추구하기보다, 자산관리 등 경쟁력을 확보한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과 리스크 관리에 집중했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지속하고 경쟁사들이 부동산 PF를 통해 수익을 끌어올리자 삼성증권도 PF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삼성증권은 지난 2021년 부동산PF 전담본부를 세우고 여기에 메리츠증권 출신인 천정환 본부장을 선임했다.
한국신용평가사에 따르면 2019년 말 대비 2021년 말 기준, 자본 대비 채무보증 익스포저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160% 늘어난 삼성증권(016360)이었다. 이 기간 대형증권사 중 채무보증 익스포저 증가 속도가 자본 증가 속도보다 빨랐던 곳은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뿐이었는데, 한국투자증권의 채무보증 익스포저는 자본보다 40% 더 늘어난 정도였다.
삼성증권은 앞으로도 부동산 PF 사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PF본부를 이끌고 있는 천 본부장은 지난해 말 정기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사 안팎에서 삼성증권이 부동산 PF 사업을 대폭 확장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며 “지난해 급등했던 금리가 하향 안정화되면서 부동산 PF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는 낮아졌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될 가능성에는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적도 당분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삼성증권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기업금융(IB)·기타수수료 수익은 336억원으로 전분기대비 35.7% 감소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지난 2~3년 동안 적극적인 부동산금융 확대로 경쟁사와 IB 실적의 갭(차이)을 축소해왔지만, 부동산금융 시장의 위축으로 추가적인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