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정청구 인용액 규모는 한 해에만 2조원에 달한다. 경정청구란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자가 세금을 더 냈거나 잘못 낸 경우 국세청에 돌려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대기업의 경우 회계법인들이 과다 청구된 세금을 찾아주고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받는다. 그렇다면 소상공인들은 어떨까. 자신이 세금을 더 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파고든 회사가 있다. 텍스테크(세금+기술) 스타트업 혜움랩스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스타트업에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하고 있다. 혜움랩스는 매출이나 손익, 급여 관리를 할 수 있는 대시보드(화면에서 다양한 정보를 한 번에 관리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해놓은 기능)나 사업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시스템 등을 제공한다. 또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더낸세금’이라는 경정청구 플랫폼도 운영 중이다.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해 올해로 다섯 돌을 맞은 혜움랩스는 올해 7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스톤브릿지벤처스와 한국투자파트너스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지금도 다수의 벤처캐피털(VC)들이 혜움랩스에 투자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또 지난 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아기유니콘 60개사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옥형석(48) 혜움랩스 대표를 만났다. 혜움랩스는 창업한 지 3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스타트업이 자금난을 겪는 시기)’를 빠르게 돌파한 셈이다. 옥 대표는 “직접 만든 세무 시스템으로 창업가들의 꿈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업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연세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당시 지도교수님과 함께 첫 창업을 했다. 연구실에서 코딩 잘하는 사람을 몇명 뽑아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넘어갔다. 그런데 1년 만에 망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식 공유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지만, 벤처 붐이 꺼져가는 시기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투자 유치가 잘 안된 것이다. 귀국해서는 LG전자 기술원에서 일했다. 회사에서 모교인 연세대로 학위 파견을 보내주더라. 박사 과정과 육아를 동시에 하며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왜 창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나.
“학위 파견 과정 중 창업 관련 수업을 맡아 강연한 적이 있다. 창업 경험 덕이다. 강의를 하며 학생들에게 창업의 장점에 대해 말하고 강하게 독려했다. 그런데 수업 마지막 날 신촌 어느 호프집에서 뒷풀이를 하다 학생이 던진 질문이 비수처럼 꽂혔다. “그렇게 좋은데 왜 교수님은 창업 안 하고, 회사로 돌아가시냐”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가슴을 쿡 찔렸다. 결국 다음 해에 LG전자를 나와 창업에 도전했다. 대기업 안에서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회사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기도 했다.”
-세무 관련 서비스를 내놓은 이유는.
“아내가 세무사다. 박사과정을 밟던 중 세무법인을 차렸다. 난 육아를 하며 여유가 넘쳤는데 아내는 달랐다. 거래처를 확보하느라 스트레스가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날 ‘AI 세무사인지 뭔지 좀 만들어봐라’고 푸념하더라.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한창 뜨겁던 시기였다. 아내에게 ‘세무사는 AI가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던진 농담이 되돌아온 것이다.
그 뒤로 세무 업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낮고 파편화된 시장이었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서비스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기술로 세무사를 대체할 순 없어도 도울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로라도 시작해봐야겠다 싶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가끔 서비스 의도를 오해 받는 경우가 있다. 세금을 30% 넘게 돌려준다고 하니 사람들이 의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정청구가 낯선 개념인 탓인지 사기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힘들게 개발하는 서비스인데 억울할 때도 있다. 대기업만 받던 절세 혜택을 모두가 누리게 하려는 것뿐이다. 물론 돈을 벌어야 서비스 유지가 가능한 만큼 우리도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받는다.”
-일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나.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때다. 회사에 ‘그리핀도르’라는 팀이 있다. 영화 ‘해리포터’ 속 그 팀 맞다. 말 그대로 환상 속의 팀이다. 결혼과 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됐던 세무 사무원들로 구성됐다. 사무원들은 세무사 못지않은 전문성을 갖고 있으나 보통 출산과 동시에 경력이 끊긴다. 그런데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 덕에 재택근무가 가능해졌다. 서비스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이런 이상적인 목표를 하나씩 구현해나갈 때 보람을 느낀다.”
-공략하는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더 낸 세금이 없게 정확하게 신고했다면 시장 규모는 0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분명히 더 내는 세금이 있다. 2020년 법인세와 종합소득세의 경정청구 인용액이 2조원에 달했다. 대부분 대기업에 치중돼있다. 중소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7~8조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추산하고 있다. 환급 비율이 10~40%까지 매우 넓다. 40%까지 환급액이 커지면 시장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물론 이 비율을 우리 서비스를 통해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목표다.”
-세무업계와의 갈등은 없나.
“당장 표면적인 갈등은 없지만 우려가 되는 부분이긴 하다. 우리 서비스는 세무사를 대체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세무사를 ‘돕는’ 서비스다. 결국엔 세무 업무는 세무사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혜움랩스는 업무 효율을 올리는 하나의 도구를 만들 뿐이다.”
-회사의 내년 목표는.
“30만 사업자를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까지 2만2000개 사업자를 고객으로 맞았다. 30만개를 달성한다면 혜움랩스의 ‘두번째 페이지’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