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방의 한 증권사 지점에서 업무 직원으로 근무하던 장모(38)씨는 ‘직원 전용 고수익 투자상품‘에 투자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지인들로부터 돈을 모으고서는 잠적했다. 개인 은행 계좌로 20여명으로부터 모은 돈만 100억원대로 알려졌다.
해당 증권사에 따르면 직원 전용 고수익 투자상품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장씨는 업무 직원으로서 투자 상품을 추천하는 영업 업무를 담당하지도 않았다. 회사는 지난달 징계위원회를 열어 장씨를 면직 처리하고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아직 장씨의 행적을 파악 중이다.
일러스트=허인회

국내 대형 증권사에서 직원들이 윤리강령을 어겨 징계를 받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직위를 이용해 고수익을 내주겠다고 돈을 모으거나, 고객 계좌에 있는 자금을 횡령해서 사적 이익을 취했다. 거래처로부터 금품이나 단체골프와 같은 접대를 받는 일도 허다했다. 사내 성희롱·성추행이나 집단 내 괴롭힘에 연루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증권사 직원 윤리강령 위반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여(2016년~2021년 5월)간 증권사 직원은 윤리강령을 총 85건 위반했다. 2016년 13건, 2017년 15건, 2018년 21건, 2019년 13건, 2020년 18건, 2021년 5건을 기록했다. 매년 평균 17건씩 윤리강령이 지켜지지 않았다.

윤리강령은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회사의 표준윤리준칙’을 각 회사가 변형해서 만든다. 회사 상황에 따라 약간씩은 윤리강령의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회사별로 조처를 내리는 기준과 정도 역시 상이할 수 있다.

2020년 기준 자기자본규모 10위권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메리츠증권, 하나금융투자, 키움증권, 대신증권이 조사 대상이었으며, 대신증권은 유일하게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조사 대상이 9개 증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한 증권사에서 2명씩 윤리강령을 어겨 징계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금융감독원 제공

가장 빈번했던 위반 행위는 증권업무와 관련해 발생했다. 증권사 직원의 증권업무 관련 위반 행위는 전체의 38건(44.7%)에 달했다. 이중 ‘고객·직원과의 금전거래’가 15건으로 가장 많았다. 자산관리(WM) 부문 직원이 고객에게 돈을 받고 업무 영역 밖의 투자를 해준다거나, 아예 돈을 가로채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일례로 2016년 KB증권(당시 현대증권)에서는 지점 영업 직원이 고금리를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불법 사금융을 벌였다. 해당 직원은 당시 타사에서 KB증권에 막 합류했는데, 직원 스스로 경찰에 불법 사금융 행위를 자수하면서 문제가 적발됐다. 해당 직원도 장씨처럼 은행 계좌로 돈을 받았다. KB증권은 당시 직원을 면직 처리했다.

또 다른 유형의 윤리강령 위반 사유는 ‘부당한 재산상 이익수령·청렴 유지의무 위반’(10건)이었다. 이외에도 ▲사기(3건) ▲위법 매매거래(3건) ▲횡령(2건) ▲이해상충 위반(2건) ▲허위 잔고확인서 작성·교부(2건) ▲직원 증권계좌 대여(1건)가 뒤를 이었다.

2018년 KB증권에선 소속 직원이 고객 계좌에서 무단으로 자금을 출금해서 횡령해 면직 처리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해엔 한 직원이 가족과 관계된 회사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신청해서 감봉 1개월 조치를 받기도 했다.

2017년 메리츠증권에선 차장급 직원이 거래처 시행사 임원으로부터 금품을 받아 면직 처리됐고,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에선 법인자금(SPC) 자산관리업무 담당자가 SPC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방식으로 금품을 수수했다가 면직 처리됐다. 한국투자증권에선 거래처로부터 단체 골프 접대를 받은 직원들이 대거 적발되면서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조직 내에서 비윤리적이거나 위법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는 전체의 47건(55.2%)에 해당했다. ‘성희롱·성추행’이 14건으로 가장 많았고, 근태 불량과 직장 내 괴롭힘이 각각 12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금융감독원

현재 금융감독원은 업무과정상 위법 행위를 검사 과정에서 적발해 제재하고 있다. 윤리강령 위반으로 사내에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 주요 제재 대상이다.

지난 5년여간 제재를 받은 업무 연관 위법 사례는 총 78건이다. 미래에셋증권이 14건으로 가장 많은 제재 조치를 받았다. 그 뒤를 한국투자증권(11건) 삼성증권(10건), NH투자증권·KB증권(9건), 신한금융투자·키움증권(7건), 대신증권(6건), 메리츠증권·하나금융투자(5건)이 이었다.

대부분 금감원은 개인의 위법 행위에 대해 회사도 책임이 있다고 보고 기관 징계를 같이 이행했다. 다만 78건 가운데 19개(24.3%) 사건은 회사가 아닌 직원만 제재를 받았다. 회사가 관리하기 어려운 직원의 개인적 일탈은 회사의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이다.

NH투자증권 직원은 회사 직위를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였다. 주변인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은 후 잠적했는데, 회사는 이 같은 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자금 모집이 별도의 은행 계좌를 통해 이뤄져서 회사 차원에서 모니터링이 불가능했다”면서 “개인 일탈로 회사 차원에서 사전에 피해를 막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사기 행위를 사전에 발각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윤창현 의원은 “사모펀드 사태로 증권사의 신뢰도가 현저히 낮아진 가운데 직원들의 비윤리적 행위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증권사가 자본시장의 맏형으로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수익률 못지않게 업무윤리와 고객믿음이라는 양대 신뢰자본 회복에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