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3월 13일 11시 49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최대 주주로 둔 홈플러스가 기습적인 기업회생 신청 직전까지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LIG건설과 동양증권 ‘CP 사기’ 사태와 같이 형사 처벌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건은 CP 판매 방식과 대상, 경영 악화 인지 여부 등 고의성 입증이 될 것이란 게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현재 홈플러스의 CP 발행잔액은 1030억원으로 집계됐다. 당장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이 160억원이다. 이어 4월 150억원, 5월 340억원, 6월 260억원, 7월 150억원, 8월 100억원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 CP는 회생 신청으로 인해 신용등급이 ‘D’까지 떨어져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된 상황이다. 법원이 최종적으로 파산 선고를 내린다면, 개인 등 홈플러스 CP 투자자는 원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시장에선 홈플러스가 회생 신청 직전까지도 CP를 발행한 것을 두고 사기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행 조건이 까다로운 회사채와 달리 CP는 이사회 의결이 없어도, 공시를 하지 않아도 발행할 수 있어 통상 사정이 안 좋은 기업들이 선호하는 자금 조달 방법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발행 기업의 신용등급과 CP 금리 수준은 알아도, 회사의 부실은 알 수 없다.
홈플러스와 비슷한 사례로 거론되는 게 LIG와 동양 사태다. 고(故)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 아들인 구본상 LIG그룹 회장과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2011년 LIG건설 회생절차 신청 열흘 전까지 약 200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했고 결국 사기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았다. 2013년엔 동양그룹이 부도 위험성을 숨기고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CP와 회사채를 발행해 현재현 당시 그룹 회장이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다.
이들 사례는 모두 고의성이 입증됐다는 데 특징이 있다. LIG건설은 회계를 조작해 부실한 경영 상태를 속이고 CP를 발행했고, 기업회생절차를 계획하고도 담보 주식 회수를 위해 CP를 계속 발행했다. 이 때문에 항소심 재판부도 “기업 사망선고에 버금가는 회생 신청을 계획하고도 대주주 일가의 담보 주식 회수를 위해 정보가 부족한 고객을 속인 것으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파렴치한 범행”이라고 꼬집었다.
동양그룹도 자금 상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법정관리 직전까지 회사채와 CP를 계속 발행한 점이 유사하다. 더 큰 문제는 계열사 동원이다. 다른 증권사는 부실 가능성 때문에 동양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판매하지 않았지만, 계열사인 동양증권이 나서서 지점별로 판촉 활동을 펴는 등 개인 투자자를 끌어모으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동양그룹은 일반 투자자 4만여명에게 1조3000억원대 피해를 안겼다.
홈플러스는 CP 상품 판매 당사자가 증권사라며 자사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회생 신청서 제출 일주일 전인 2월 25일에도 CP를 발행한 것과 관련, 주기적인 발행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MBK파트너스 인수 전인 테스코 시절부터 CP 발행은 수년간 매월 주기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했다.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인지한 것 또한 마지막 CP 발행일인 2월 25일 오후 4시로 알려졌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주말 사이 회생 절차를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홈플러스 설명이 맞는다면, 사기 혐의는 벗게 된다.
다만 피해자가 적지 않은 만큼 금감원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관련 증권사는 물론, 신용평가사까지 검사에 돌입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사기 혐의에 무죄가 내려진 경우도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1200억원가량의 사기성 CP 발행 혐의에 대해 2014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실에 빠진 웅진그룹 부도를 피하기 위해 CP를 발행한 점이 인정되고, 이 과정에서 윤석금 웅진 회장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출연하는 등 ‘범죄의 고의성’이 약했다는 이유에서다. 웅진그룹 CP 발행의 경우 신규 발행이었던 LIG와 달리 기존에 발행된 어음의 만기 도래에 대비한 ‘차환 발행’이었다는 점도 참작됐다.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측은 회생 신청 후에야 리테일로 판매된 것을 알게 됐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고의성 여부가 어떻게 증명될지가 사기 혐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