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 달리(DALL-E)

“회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배라고요? 그 기업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당해야죠.”

지난해 12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 토론회. 좌장으로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토론자로 참석한 한 상장사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회사 PBR을 묻고는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게(적대적 M&A) 경쟁을 촉발해 주가를 정상화하는 것 아닌가”라고도 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회사의 경영권은 교체돼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이지만, 시장은 호응했다. “경영권은 지배주주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다”라며 “적대적 M&A는 위법이 아니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적대적 M&A 는다… 인식 변화에 상법 개정 속도

적대적 M&A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 과거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대표되는 투기자본의 기업사냥 정도로 인식됐지만, 자본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 주식투자자 수 증가와 함께 적대적 M&A를 대하는 개인투자자의 인식 수준도 과거와 달라지면서다.

특히 최근 민주당이 입법하려고 하는 상법 개정안 통과 시 적대적 M&A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는 소수 다수 주주의 의견을 경영에 직접 반영할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 다수 포함됐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확대가 대표적이다. 지배주주 중심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들로, 이를 활용해 소액주주 세를 규합하면 경영진 교체에 바로 나설 수 있다.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는 “과거에는 자산가치는 10조원인데 시가총액이 3조원에 그쳐도 투자자들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제는 경영진의 문제로 보는 시선이 강해졌다”면서 “상법 개정은 ‘제대로 못하면 경영진이 바뀌는구나’ 이후에는 ‘경영권을 뺐을 수도 있구나’라는 인식의 변화를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 “주주 위한 경영해야” 이사 충실의무, 회사 넘어 주주로

상법 개정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월 한국거래소를 찾아 “(지배주주 중심 의사결정을 넘어) 소액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후 재계가 반발하자 정부와 여당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를 받아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정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 조기 대선 및 민주당의 대권 장악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법 개정 추진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정문 민주당 의원 등 18인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상법 일부개정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현재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가 있다.

현행 상법에서 경영진인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을 뿐,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없다. 이로 인해 기업이 소액 다수 주주의 이익을 외면한 채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상법 개정은 침체한 국내 주식시장, 일명 국장을 되돌릴 불씨로도 주목을 받는다.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소수 지배주주가 좌지우지하는 한국 특유의 의사결정 구조가 투자자들이 한국을 외면하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 개정 상법 세부안, 적대적 M&A 핵심 동력 역할 전망

개정안에는 구체적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부분에 ‘회사를 위하여’ 대신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가 명문화됐다. 동시에 경영진이 소액 다수 주주의 이익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부안이 포함됐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분리 선출 감사위원 수 확대 등이 핵심이다. 사외이사에는 독립이사라는 새로운 명칭을 내세웠다.

당장 집중투표제와 분리 선출 감사위원 수 증가는 적대적 M&A 증가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집중투표제는 상법 규정에서 기업의 경영을 결정하는 이사회 내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Ⅱ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가령 한 기업이 10명의 이사 선임을 추진할 때 집중투표제에선 주식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부여된다. 이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 1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의결권 기준 과반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라고 하더라도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지 못할 수 있는 셈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에 있어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3%룰’이 적용되는 감사위원 수도 2인으로 늘어나면 적대적 M&A, 즉 경영권에 압력이 가해질 확률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사회 장악 쉬워진다” 적대적 M&A 증가 이미 시작

감사위원 선임 3%룰은 3%보다 지분을 많이 가진 주주의 의결권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현행 상법에서 이미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주식의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선임 대상 감사위원 수를 1에서 2명으로 늘렸다.

김춘 상장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기존 대주주 쪽의 지분이 많아도 3%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 공격자 쪽이 원하는 감사위원으로 모두 채울 수 있다”면서 “감사위원을 2명으로 채우고,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 일부를 확보하면 이사회 장악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적대적 M&A 증가는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 중 지배주주 지분율이 비교적 낮고, PBR이 1배에 미치지 못하는 상장사의 경영진 교체라는 적대적 M&A를 핵심 전략을 내세운 운용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21년 신기술사업금융회사로 청담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적대적 M&A를 새로운 운용전략으로 꺼내 들었다. 청담인베스트먼트는 상법 개정 이후 집중투표제를 활용한 이사회 장악을 목표로 잡고, 코스닥시장 상장사의 전환사채(CB) 매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세익 대표는 “그동안은 아무리 주식을 사고 또 주주 서한을 보내도 소귀에 경 읽기였지만 상법 개정 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지배주주 지분율은 40% 이하로 비교적 낮은 수준인데, 회사의 비즈니스 매력도가 높은 곳이라면 적대적 M&A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적대적 M&A,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냐”

외국인 주주가 행동주의 펀드로 변신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자산가치는 10조원인데, 시총이 5조원 혹은 3조원도 되지 않는다면 향후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킨 뒤 주주가치 제고를 직접 요구하고 또 관철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적대적 M&A 증가를 앞두고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자사주 매입이 늘고 있다. 자사주의 우호지분 활용 가능성이 크다.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상장사는 총 665개사로 전년 동기 421개사와 비교해 58%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적대적 M&A의 작동만큼은 기업의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소액주주들 역시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원하지 기업의 경쟁력 상실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적대적 M&A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라면서 “적대적 M&A의 이유는 대주주가 경영을 부실하게 하거나, 주가가 부진하거나 등의 경우인데, (적대적 M&A 시도로 인해) 경영을 잘하게 하거나, 주주와 소통에 힘쓰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