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의 교보생명보험 본사. /김남희 기자

교보증권(030610)이 지난달 2500억 원 규모 유상 증자를 통해 발행한 신주가 20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교보증권은 2020년 6월(2000억 원)에 이어 3년 만에 유상 증자를 했다. 두 차례 모두 최대주주 교보생명보험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방식이었다. 이번 유상 증자 후 교보증권의 발행 주식 총수는 76% 넘게 늘었다. 대규모 유상 증자로 교보생명의 교보증권 지분율은 73.15%에서 84.75%로 높아졌다. 15%가량을 제외한 교보증권의 모든 주식을 교보생명이 확보했다.

일반 주주 사이에선 유통 주식 수 증가로 인한 주식 가치 희석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수년 전 경쟁사들이 잇따라 몸을 불릴 때 같이 했으면 부동산 호황기 특수를 누렸을 텐데, 주가가 한참 바닥을 기는 지금 진행하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교보증권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인가 기반 조성과 이익 창출력 제고, 재무구조 개선을 유증 목적으로 제시했다. 종투사 신청 자격 요건인 자기자본 3조 원을 채우기 위해 자본금 확충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만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추가 유상증자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증자 후에도 교보증권 자기자본은 2조 원에 못 미친다.

서울시 종로구의 교보생명보험 본사. 지하에 교보문고가 있다. /김남희 기자

◇ 교보증권 지분 85%로 높인 교보생명

교보생명 이사회는 지난달 22일 계열사인 교보증권에 2500억 원 출자를 결정했다. 교보증권은 교보생명을 대상으로 주당 5070원에 보통주 4930만9665주를 새로 발행했다. 총 발행 주식 수는 1억1396만2961주로 76.26% 늘었다. 주가가 지난해 9월 6000원 아래로 내려간 후 1년째 5000원대를 못 벗어나고 있는데, 주식 수가 늘면 주가가 더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일반 주주들의 비판이 나왔다. 신주는 주권 상장일로부터 1년간 보호 예수로 묶여 매매가 제한된다.

소액 주주들은 최대주주인 교보생명이 헐값에 교보증권 지분을 늘렸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교보증권의 신주 발행 가격은 5070원으로, 액면가와 별 차이 없다. 6월 말 교보증권 주당순자산가치(BPS·순자산가치를 총 주식 수로 나눈 것)가 2만5454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BPS의 20% 수준에서 새 주식을 찍어낸 것이다. 교보증권의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를 BPS로 나눴을 때 몇 배 수준인지 보여주는 지표)은 0.2배인데, PBR이 1 미만이면 주가가 주당순자산가치에 비해 낮은 수준이란 뜻이다.

주주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는 “현재 교보증권 주가는 순자산가치의 5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인데, 교보생명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구태여 교보증권 주가를 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여의도 교보증권 건물. /교보증권

교보증권은 2020년 6월에도 교보생명을 대상으로 2000억 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 증자를 했다. 교보생명 자산운용 담당 부사장 출신인 박봉권 현 교보증권 대표가 2020년 초 대표이사로 취임한 직후다. 당시 교보증권 주가는 2019년 말 9000원대에서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증시 전반 약세로 2020년 3월 4900원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1차 유상 증자 때도 총 발행 주식의 80%에 가까운 주식을 새로 발행해 일반 주주 사이에 주가 하락 우려가 컸다.

교보생명의 교보증권 지분율은 73.27%에서 유상 증자 후 9월 6일 기준 84.89%(특별 관계자 박봉권·이석기·신평재 포함)로 높아졌다. 1차 때 51%에서 73%로 높인 후, 2차 때 85%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교보증권은 소액 주주 반발을 의식한 듯, 1차 유상 증자 이후 차등 배당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2월 이사회에선 최대주주에겐 무배당, 기타주주에겐 주당 200원을 배당하는 차등 배당을 결의했다. 결산 배당 총액은 32억 원 수준이었다.

신창재 교보생명보험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회장)이 2023년 8월 7일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열린 창립 65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신 회장은 보험산업이 맞닥뜨린 위기를 언급하며 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진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보생명

◇ 표면적으론 종투사 인가 목적…“너무 늦었다” 지적도

교보증권은 이번 유상 증자의 가장 큰 목적으로 종투사·초대형 IB(투자은행) 인가를 내세웠다.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해 덩치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최대주주를 제3자 배정 대상자로 선정한 이유론 “회사 경영상 목적 달성과 배정 대상자의 납입 능력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종투사 자격 요건은 별도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 3조 원,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4조 원이다. 현재 60개 증권사 중 금융위원회로부터 종투사 허가를 받은 곳은 9곳(메리츠·미래에셋·삼성·신한투자·키움·하나·한국투자·KB·NH투자), 초대형 IB로 지정된 곳은 5곳(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KB·NH투자)뿐이다.

증권업은 기본적으로 자본력 싸움이다. 자본 규모가 클수록 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이 많아지고, 사업별 규모의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손실 감내력도 커진다. 그러나 이번 유상 증자 후 교보증권 자기자본은 1조8679억 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 종투사 조건인 3조 원은커녕 2조 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종투사 전환을 추진 중인 대신증권(003540)의 자기자본은 6월 말 2조1000억 원 수준이었다. 교보증권이 1조1000억 원 이상을 더 확충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유상 증자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교보증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70%씩 줄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474억 원)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15% 줄었고, 순이익(470억 원)은 10% 늘었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올해 상반기 위탁매매업과 자기매매업, 장내외파생상품업에선 이익을 냈지만, 투자은행업에선 117억 원 손실을 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대손충당금(떼일 것에 대비해 쌓아두는 돈)을 늘린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교보증권 측은 지속적으로 위탁매매업(브로커리지) 비중을 줄이고 수익 구조를 다변화했다고 했으나, 여전히 위탁매매업이 전체 이익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자본금을 키우려면 순이익을 늘려야 하는데, 사업다각화가 늦었다 보니 특색이 없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석기 교보증권 대표는 2023년 8월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의 지목을 받아 어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여름휴가는 어촌·바다로 캠페인'에 참여했다. /교보증권

◇ 금융지주사 설립 박차…비(非) 생명보험 계열사 키워야

교보생명은 지난해 7월 세 번째 IPO 시도가 무산된 후,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지주사 설립을 진행 중이다. 재무적투자자인 어피니티컨소시엄 등과의 법적 다툼으로 증시 상장에 계속 제동이 걸리자 일단 금융그룹 체제 전환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최대주주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측과 2대 주주인 어피니티컨소시엄의 경영권 분쟁을 이유로 교보생명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미승인을 결정했다. 이례적으로 상장 예비 심사 단계에서 탈락한 것이다. 신 회장이 직접 상장공시위원회에 출석해 상장 허락을 호소했는데도, 경영 안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3년 상반기 기준 교보생명보험 계열사 관계도. /교보증권

신 회장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교보생명 지분 24%를 매각할 때 경영권 방어를 위해 어피니티를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은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총 1조2000억 원)에 매입하며, 계약서에 교보생명이 3년 안에 IPO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어피니티 측이 풋옵션(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IPO가 좌절되자, 어피니티 측은 2018년 신 회장 측에 주당 40만9912원에 주식을 되사가라며 풋옵션을 행사했다. 신 회장 측은 어피니티 측 주도로 산정된 가격(공정시장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거부했고, 어피니티 측은 이듬해 3월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ICC는 2021년 9월 신 회장이 어피니티 측이 요구한 가격을 수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정하면서도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권리 자체는 인정했다. 어피니티 측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2022년 2월 ICC에 2차 중재를 신청했다.

한 투자업계 종사자는 “교보생명 IPO는 신 회장과 재무적투자자 두 곳 사이의 국제 분쟁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다만 최근 분쟁 당사자인 재무적투자자 측의 경영진이 물갈이됐기 때문에 새 경영진의 방침에 따라 양측이 갈등을 마무리 지을 여지가 생겼다”고 했다. 지난달 어피니티컨소시엄의 주축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이철주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교보생명 사외이사직도 사임했다.

교보생명은 금융지주사 설립 후 기업가치를 높여 상장을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금융지주’를 만들려면 주력인 생명보험 외의 사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 중심에 교보증권이 있다. 교보증권은 교보생명 계열사 중 유일한 상장사다. 교보생명은 손해보험사·자산운용사 인수 등을 추진하면서 비생명보험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