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001450)이 지난해 신설된 직책인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에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 전무를 선임하며 ‘3세 경영’을 시작했다. 다른 보험사 오너 3세들보다 경영 합류가 늦은 만큼 경영 능력 입증이 시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전무의 첫 경영 능력 시험대는 현대해상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이었으나, 사업이 잠정 보류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 전무가 보유한 현대해상 지분이 0.45%에 불과하다는 점도 경영권 승계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정 전무가 시가총액 1조7800억원의 현대해상 지분을 직접 매입하거나, 정몽윤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으려면 수천억원의 자본이 필요한 상황이다.
10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1986년생인 정 전무는 최연소 임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지난해 1월 현대해상 CSO로 공식 입사했다. 팀장 또는 차장에서 시작해 실무를 익힌 뒤 임원으로 승진하는 다른 보험사 오너 3세와 달리 곧바로 임원 자리에 올라 경영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현대해상은 이에 맞춰 정 전무 산하에 있는 지속가능실 직원들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며 힘을 보탰다.
정몽윤 회장은 현대해상 지분 2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대해상은 마이금융파트너·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현대하이라이프손해사정 등 6곳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이 중 현대하이카·현대씨앤알은 현대에이치디에스(HDS) 지분을 각각 절반씩 가지고 있고, 현대HDS는 다시 애드커넥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해상만 지배하게 되면 모든 계열사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구조다.
보험업계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첫 단추로 정 전무의 경영능력 입증을 꼽고 있다. 주로 외부 창업 활동을 하다가 임원으로 합류한 만큼 경영능력은 의문점으로 남는다. 정 전무의 첫 시험대였던 제4인터넷은행 설립은 실패로 돌아갔다. 정 전무는 현대해상 합류 한 달 만에 삼쩜삼이 운영하는 핀테크 자비스앤빌런즈를 비롯해 렌딧·트레블월렛·루닛 등과 함께 ‘유뱅크’ 컨소시엄을 구성, 제4인터넷은행에 도전했다. 정 전무는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디지털전략본부를 지휘했다. 하지만 유뱅크는 경제·정국 불안정 등을 이유로 예비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정 전무가 다른 보험사 오너 3세들에 비해 경영합류가 늦어진 데는 그의 창업활동 때문이었다. 정 전무는 2012년 사회적기업 루트임팩트를 설립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라는 행보를 시작했다. 현대해상이 보험업계에서 처음으로 CSO 직책을 만든 것도 정 전무의 경력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루트임팩트는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젊은 창업가들의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경선 전무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정 전무가 보유한 현대해상 지분은 0.45%에 불과하다. 직접 시장에서 현대해상 지분을 매입하거나, 정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물려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날 기준 현대해상의 시가총액은 1조7880억원으로 정몽윤 회장의 지분(22%) 가치는 3934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전부 증여한다고 가정하면, 대주주 할증을 포함한 증여세는 약 2300억원 수준이다.
정몽윤 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8남 3녀 가운데 7남이다. 1988년부터 현대해상 대표이사를 지내다가 1999년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했다. 당시 외환위기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압박이 거세진 데 따른 것이다. 이후에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기업보험 물량을 대거 몰아주면서 ‘형식적인 계열분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1955년생으로 올해 만 70세라 순차적인 경영승계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