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이 카메라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3년 동안 직원들 업무 강도는 확실히 세졌죠. 그렇다고 직원들 처우가 개선됐나요? 그건 또 아니에요.”금융감독원 직원 A씨
최근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뉴스에 나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볼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합니다. 이 원장이 외부 일정과 언론 노출은 자주 챙기면서 ‘집안 살림’은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안팎에서는 이 원장 대신 수석부원장이 조직관리를 떠안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 원장이 임기 말 ‘광폭 행보’로 레임덕(권력누수)을 모면했지만, 정작 조직 내부에서는 ‘불통 행보’를 보여 직원들의 원성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금감원 노조는 지난 17일 금감원 내부 인트라넷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즉각 금감원 노조위원장과의 면담에 직접 응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게시했습니다. 해당 성명엔 금감원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이 4개월째 지지부진한 이유가 이 원장 때문이라는 주장이 담겼습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임단협이 시작됐는데 노사 교섭에서 이 원장은 한 차례만 얼굴을 내비쳤다고 합니다. 또한 노조는 물밑 교섭을 위해 이 원장에게 여러 차례 면담을 요구했는데 이 원장 측이 마냥 면담을 피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직원은 “이 원장이 금감원 최고의사결정권자인데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직원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금감원 구성원들이 이 원장의 조직관리를 두고 불통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 원장 특유의 예고 없는 물갈이 인사는 예전부터 직원들의 불만을 키웠습니다. 지난해 12월 10일, 금감원은 부서장 75명 중 74명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99%에 달하는 대규모 부서장 교체는 금감원 역사상 처음입니다. 이마저도 이 원장의 원래 의중은 전 부서장 교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여파를 고려해 금융시장안정국장만 유임시켰습니다.
당시 금감원 직원들은 비상계엄 직후 금융시장 안정에 집중하느라 연일 철야 근무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 예고 없는 대규모 인사는 직원들의 혼란을 키웠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예전엔 인사 당사자에게 인사 발령 하루이틀 전 귀띔이라도 해줬는데 지금 원장 체제에선 당사자라도 공지가 나올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 직원은 “인사 교체 규모는 커졌는데 기준은 모호하다”며 “지금 원장이 부임하고선 직원들은 하루하루가 비상계엄이다”라고 귀띔했습니다.
최근 직원들의 허탈함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 원장이 임기 만료 3개월을 앞두고 조직관리는 뒤로 미룬 채 외부 노출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당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려하자 이 원장은 지난 13일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원장의 작심발언은 ‘월권’ 논란을 초래하면서도 상법 개정 이슈 속 이 원장의 존재감을 띄웠습니다.
또한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선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재계를 의식하며 “한국경제인협회에 공개적으로 토론을 제안한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금감원은 20일 한경협에 공개토론 제안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현직 금융감독원장이 소관 업무 외 사안으로 민간단체에 공개 토론을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직원들은 이 원장의 활발한 대외활동 때문에 실무진들의 업무만 늘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 원장의 행보가 단순히 혼자 말하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원장의 메시지 표출 전 실무진들은 각종 자료를 준비해 보고합니다. 발언 후 국회와 언론 등의 질의에 응대하는 것도 실무진의 몫입니다. 또 다른 직원은 “이 원장 대외 메시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직원들 사이에선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공통적인 생각이 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