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강남 3구 (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다시 묶으면서 은행의 대출 문턱도 높아지고 있다. 은행들이 급하게 대출을 조이면서 실수요자들의 자금 마련에도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오는 28일부터 유주택자의 투기지역(강남 3구와 용산구) 내 주택 매입 목적 신규 대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해당 지역에선 무주택자인 경우에만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날 하나은행도 오는 27일부터 서울지역에 한해 ‘유주택자의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및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의 신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1주택 이상 보유자가 서울에 있는 주택을 구입할 경우 주담대 신규 취급을 중단한다. 이미 NH농협은행은 가장 먼저 서울 지역에 한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취급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SC제일은행도 오는 26일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생활 안정 자금 목적의 주담대를 중단하기로 했다. 나머지 은행들도 다주택자 주담대 제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이 서둘러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는 데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재지정한 것과 연관이 깊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이후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집값 상승폭이 확대되고 인근 지역으로 매수가 확산되면서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583조3607억원으로, 전월 대비 3조3836억원 급증했다.
금융 당국은 대출 수요 증가에 은행권에 ‘자율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분기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초과하는 금융사에 대해서는 경영진 면담을 통해 초과 원인을 점검하겠다”고 경고했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도 “안정적인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서는 금융권 스스로 시장 상황에 대해 판단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금융권의 자율 조치가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강력한 대출 억제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율 조치’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이 현장의 혼란을 야기하는 중이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금융 당국은 기준금리 인하 체감 효과가 떨어진다며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해야 할 때”라고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를) 좀 반영할 때가 됐다”라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가 은행 대출금리에 반영될 시기가 됐다. 올해 1분기에는 금리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라고 언급했다.
정부가 다시 정책을 수정하면서 은행들도 부랴부랴 ‘태세 전환’에 나섰지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은행이 너나 할 것 없이 대출 가산금리를 서로 낮추고 문턱을 낮추는데 혈안이었는데, 바로 이렇게 상황이 달라져 버리니 가계대출 목표치를 조절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으면서 책임을 은행에 넘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출 실수요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리인하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대출규제가 본격화되기 전에 상담을 받으려는 금융 소비자들의 문의도 빗발치는 중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대출규제 시행 전 며칠 정도 시간이 있기 때문에 시행 예정일이 발표되고 난 직후엔 기존에 대출을 받으려고 계획했던 분들의 문의가 많이 오기도 한다”며 “당장 추가로 검토하고 있는 규제는 없지만 다른 은행들이나 당국의 입장 등 추이를 보면서 검토 사항이 생길 순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