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은행들이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등 집값 과열 지역 주택 구매 목적의 다주택자 신규 주택담보대출,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급증세를 잡기 위해 다주택자·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수)자 규제 강화 의지를 내비친 데 따른 조치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강남 3구 등에 한해 1주택 이상 유주택자 주담대 및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 전체가 아닌 집값이 단기 급등한 서울 일부 지역에 한해 대출 규제를 적용하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세부적인 내용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하나은행은 5대 시중은행 중에서 유일하게 다주택자 주담대와 조건부 전세대출을 막지 않은 곳이다. 지난해 하반기 거의 모든 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였을 때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재 시중은행 중 수도권 추가 주택 구매 목적의 다주택자 주담대를 취급하는 곳은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뿐이다. KB국민‧신한‧농협은행은 수도권 1주택자 신규 주담대를 이미 제한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다주택자 주담대를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전날 토지거래허가제 지역으로 지정된 강남 3구와 용산구 소재 주택 매매 시에 한해 규제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1일 다주택자의 수도권 추가 주택 구매 자금 대출을 허용했는데,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주문에 한 달 만에 대출 정책이 뒤집히게 됐다.

조건부 전세대출도 받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현재 서울 지역 조건부 전세대출을 취급하는 곳은 하나은행이 유일하다. 그동안은 NH농협은행에서도 조건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나, 오는 21일부터 서울 지역에 한해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조건부 전세대출은 임대인의 소유권 이전, 선순위 근저당 감액·말소, 신탁 등기 말소 등의 조건과 동시에 받는 대출을 일컫는데, 전세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에 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 /뉴스1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 규제를 다시 강화하려는 것은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전날 열린 ‘부동산 관계기관 회의’ 브리핑에서 “다주택자나 전세를 낀 갭투자자에 대한 대출은 금융권이 스스로 차단하는 조치를 하고 있고, 그런 움직임이 아마 3월 중 금융권에서 가시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처럼 올해도 유사한 (대출 규제) 조치를 1단계로 해나갈 것”이라며 “만약 잘 안되면 강력한 대출 억제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고, 이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운용의 묘’를 언급하며 은행의 자율 규제 원칙을 강조하고 있으나, 은행들은 당국의 규제 방향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 관계자는 “자율이라곤 하나 금융 당국의 정책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며 “올해 상반기까진 대출 규제를 완화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지난달 증가한 가계대출이 이달 다시 안정화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집값 오름세가 가팔라 추이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3월은 통상 1분기 말이라 은행들이 대출 채권을 대규모로 상각하기 때문에 가계대출 증가세가 상쇄되는 부분이 있어, 2월만큼 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은 당분간 집값이 급등하고 거래량이 폭증한 지역 단위로 가계대출 추이를 세분화해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