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원대 중반의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외화 곳간 관리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은 시장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에 대비해 당장 유동 가능한 현금 보유량을 늘리면서 고환율에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20일 한국은행의 ‘2025년 제4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 사이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한 금통위원은 ‘국내 정치 리스크가 다소 완화됐음에도 환율 하락이 제약된 이유’에 대해 질의하면서 “지난해에는 환율 상승 등으로 일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 관리에 대한 우려가 컸으나 고환율이 상당 기간 유지되면서 현재는 금융기관이 적응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관련 부서도 이에 대해 “국내 금융기관 대부분이 충분한 외화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고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을 고려하면 현 환율 수준에서 금융기관에 나타나는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고 답변했다.
통상 원·달러 수준이 높아지면 은행의 대표적인 자산 건전성 지표인 BIS 자기자본비율과 유동성 지표인 외화 LCR이 악화된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환율이 오르면 외화 자산 익스포저(위험노출)가 늘면서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해 BIS 자기자본비율이 감소하게 된다.
외화 LCR은 앞으로 30일간 은행이 순외화 유출에 대비해 쌓아둬야 하는 달러·미국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이다. 환율이 오르면 파생거래 담보를 더 많이 내게 되고 외화예금이 감소하는 등의 이유로 LCR이 줄어든다. 원·달러 환율이 올해 1분기에만 평균 1450.7원을 기록하는 등 1400원 중반대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시중은행들이 건전성 관리에 촉각을 기울여왔다.
실제로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외화 LCR 비율을 관리하며 고환율에 적응해 왔다. 정부는 외화 LCR 비율을 80%를 넘겨야 한다는 기준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일제히 150% 이상으로 관리 중이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4대 시중은행들의 LCR 비율은 181.62%로, ▲하나은행 240.30% ▲우리은행 178.3% ▲국민은행 142.08% ▲신한은행 165.88% 등이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LCR 비율은 161.8% 수준이었는데, 이보다 더 넉넉하게 올려둔 것이다.
곳간은 여유롭지만 은행들은 외화예금을 계속 늘리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경우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 관리 부담이 또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시중은행들의 달러 예금 잔액은 하루 사이에 조 단위가 오가기도 하는 등 변동성이 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LCR이 높은 편이고 고환율 이후 꾸준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 대응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자금 이탈 등을 고려해 은행들이 보수적인 계획을 세운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