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눈에 애플페이는 ‘계륵(雞肋·닭갈비)’ 같은 존재입니다. 계륵은 중국 삼국시대 조조가 유비와 한중 땅을 놓고 겨루다 ‘한중에서 얻는 이익은 크지 않은데 유비한테 홀랑 넘기긴 아깝다’며 닭갈비에 빗댄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입니다. 국내 시장에서 애플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서비스이지만 매출 기여는 기대보다 크지 않습니다. 수수료를 이중으로 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선 애플페이를 깔끔하게 포기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대형 카드사인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가 애플페이 서비스 제휴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형사의 애플페이 도입 후에도 당장 카드결제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작을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애플페이 확산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신한·KB국민·현대카드 3사가 애플페이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연간 발생할 애플페이 결제금액을 7조~8조원 수준으로 잠정 계산했다고 전해집니다. 8개 카드사의 지난해 개인·법인카드 결제금액(856조원)과 비교하면 1%에 못 미칩니다.
국내 1호 제휴사인 현대카드의 애플페이 실적도 걸음마 수준입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페이를 통해 이뤄진 현대카드 결제승인금액은 총 2조97억원입니다. 이는 현대카드 전체 카드 결제승인금액(185조5664억원)의 1.1%에 불과합니다. 애플페이로 현대카드가 벌어들인 가맹점 수수료는 340억원가량으로 추산됩니다. 지난해 현대카드 매출(3조9638억원)의 0.9% 수준입니다.
더욱이 카드사는 애플페이 결제 때마다 이중 수수료 부담을 집니다. 현대카드는 애플페이 결제금액의 0.15%를 애플에 내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와 별개로 애플페이 결제 1건당 2센트(약 30원)를 비자 혹은 마스터카드에 지급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카드의 애플페이 결제금액과 결제건수를 고려하면 지난해에만 약 69억원의 수수료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카드업계 역시 애플페이의 계륵 같은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애플페이 도입을 준비하는 카드사들도 단기간 큰 매출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란 게 카드업계의 중론입니다. 다만 카드업계는 애플페이를 받아들이는 김에 국내 카드결제 환경이 글로벌 표준처럼 바뀌길 내심 바라고 있습니다.
애플페이 결제는 국제 카드결제 표준인 EMV(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 방식 중 비접촉 결제를 통해 이뤄집니다. 국내 카드 가맹점 중 EMV 비접촉 결제를 지원하는 곳은 전체 10% 내외에 그칩니다. 카드업계 일각에선 글로벌 주요 금융사들이 EMV 비접촉 결제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펼치는 만큼 국내에도 EMV 비접촉 결제가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내 결제시장의 ‘갈라파고스화’를 막자는 의견인데 글로벌 유력 서비스인 애플페이와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지난해 기자들과 만나 애플페이 도입 이유에 대해 “EMV 파생을 위해 (애플페이에) 들어가자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카드사도 기업인 만큼 손익계산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드사에 애플페이는 먼 미래의 매출을 내다보는 수인 ‘장기포석(長期布石)‘입니다. 우리나라 20대 중 64%는 아이폰을 이용하는 등 전 세대 중 20대의 아이폰 이용 비율이 특히 높습니다. 아이폰 이용자들 사이에선 ’락인(Lock-in·자물쇠)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카드사 입장에선 지금의 20대가 아이폰을 계속 이용한다는 가정 아래 이들의 소비 여력이 늘어나는 후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당장 20대의 카드매출 기여는 작을 수 있으나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애플페이 도입을 서두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