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이 연루된 780억원대 부당대출 사고가 벌어지는 4년 동안 우리은행 임직원들은 관련 대출 사실을 알고도 내부고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감독규정과 자율규제에 따라 금융사 직원은 부당대출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회사에 제보하도록 돼 있지만 아무도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우리은행 역시 내부고발 의무를 저버린 임직원을 조사하고 징계해야 하지만 내부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13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손 전 회장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2021년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이, 2022년 우리은행 홍보브랜드그룹장과 여신그룹부행장이 손 전 회장에게 부당대출 정황이 있다고 보고했다. 여신그룹부행장은 “회장님 처남이 대출 브로커로 활동하는데 처남과 연관된 부실대출이 암암리에 취급되고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투서를 손 전 회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당시 우리은행 경영진 등 상당수 임직원들이 부당대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자율규제인 금융사고 예방지침에 의하면 은행 임직원은 금융사고가 예상되는 경우 내부고발 채널을 통해 제보해야 한다. 보통 은행들은 금융사고 예방지침을 내규에 반영한다. 우리은행 역시 본부와 영업점마다 준법감시조직을 설치하고 내부고발을 받고 있다. 그러나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부당대출이 실행되는 동안 우리은행 준법조직에 접수된 제보는 0건이었다. 노조위원장과 홍보브랜드그룹장, 여신그룹부행장이 손 전 회장에게 직접 보고한 건은 내부고발에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은행 사측도 내부고발 관련 의무가 있으나 지키지 않고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상 은행은 위법·부당행위를 인지하고도 회사에 제보하지 않은 임직원에게 불이익을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내부고발 의무를 저버린 임직원에 대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부당대출이 벌어질 당시 임직원들이 내부고발 대상 사건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내부고발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은 이번 사안을 두고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사고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은행이 사고 이후 내놓은 시스템 역시 신뢰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고 이후 내부통제 시스템 정상화를 위해 내부 고발용 채널인 ‘헬프라인’을 도입했다. 외부 채널을 통해 신고를 접수하는 방식으로, IP추적이 불가능해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내부와 외부 상관없이 내부자가 고발해서 얻는 이익보다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이 같은 시스템은 실효성이 작을 수 있다.
전문가는 부당행위를 인지하고도 회사에 제보하지 않은 임직원을 감사로 징계하는 방식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수용 한국금융연수원 교수는 “금융사고는 당사자가 철저하게 숨긴다고 하더라도 결국 은행 내부의 주변 사람들은 인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부당행위를 인지하고도 고발하지 않은 사람에게 철저히 불이익을 줄 것이란 시그널을 명확하게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회사에 주는 치명타를 줄이기 위해서 금융사고를 초기에 적발하는 것이 핵심인 만큼 주변 직원들의 내부고발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