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법 사금융과 전쟁에 나섰다. 반사회적 대부 계약을 원천 무효로 하고 대부업 등록 기준 상향, 불법 사채업자 처벌 강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후 오는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불법 사금융 척결을 위한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뎠지만,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불법 사채업을 해선 돈을 벌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벌금형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문턱을 높인 대부업권의 금융 공급 기능 회복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비즈가 만난 정치권과 학계 그리고 금융권 관계자들이 제시한 해법을 풀어봤다.
◇ “출소 후 불법사채 또 손대…처벌 강력해야”
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재선·서울 강북갑)은 “법정 최고금리(연 20%)를 넘어선 대부계약을 무효로 하고, 벌금 최고형을 기존의 10배인 5억원으로 상향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며 “불법 사채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 자체를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해 불법 사채업자들을 엄단해야 한다”고 했다.
천준호 “기존에는 지나치게 낮은 대부업 자기자본 요건으로 대부시장이 관리·감독 되지 못하고 방치됐다. 불법 사채업자가 1000만원을 잠시 융통해 대부업 등록을 한 뒤, 정식 대부업체인 척해 상담을 요청한 금융 소비자에게 수천% 이자를 착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업 등록 자금 요건을 기존 1000만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10배 상향되면, 이런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강력한 금전 처벌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대부업 범죄는 그 특성상 징역형 등 인신 구속 형벌은 징벌 효과가 크지 않다. 징역형을 살다 나와 다시 범죄를 저지르며 부를 쌓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법사채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범죄를 통해 금전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불법 사채업자의 대부계약은 이자 전체를 무효화하고, 벌금 최고형도 10배 상향해 기존 5000만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올렸다. 법정 최고금리 위반 시 벌금도 기존 3000만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대폭 상향했다.
벌금형 기준을 높였지만, 실제 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현실 재판에서도 이런 기준이 반영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부업법 양형기준은 2017년 설정된 이래로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이번 법 개정으로 대부업 범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달라졌다고 봐야 한다. 법원행정처 양형위원회가 관심을 갖고 빠른 시일 내에 양형기준을 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 대법원 판사들과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 “대부업 저신용자 금융 공급 활성화 방안 만들어야”
최철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인 대부업 시장의 공급 활성화 정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취약한 대출 수요자들이 돈을 빌릴 시장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라며 “정상 대부업체에 대한 인센티브와 시장 공급 활성화 정책을 다각적·다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안용섭 사단법인 서민금융연구원 원장은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철 “대부업은 제도권 금융의 경계에 있는 곳이다. 대부업은 은행권이나 다른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신용 등급 7등급 이하, 신용 점수 하위 20% 이하인 분들이 주로 찾는다. 대부업체가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하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법정 최고금리가 정해진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이어져 이익이 안 남아 대부업체가 영업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정부가 이 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공급 활성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수 대부업자에겐 조달 금리에 우대금리를 더해 이자 부담을 덜어주거나, 은행 등 안정적인 자금 조달처를 마련해주는 식의 대책이 필요하다. 수요자 편익을 위해 자금 공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정책은 대부업 규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용섭 “2021년 7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내려간 이후 등록 대부업체의 대출액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우수 대부업체가 영업을 못 하는 것은 이익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수천% 금리로 이자를 받는 것과 비교해 최고금리 연 20%, 30%는 서민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 연구원 조사 결과 연 27% 정도로 법정 최고금리를 인상하면 대부업체들이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대부업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훼손된 대부업체 이미지 회복을 위해 명칭을 바꾸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 “저신용자 위한 은행 소액 대출·공동 펀드 조성해야”
전문가들은 은행이 저신용자를 위한 자체 소액 대출 상품을 개발하는 등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긴급 소액 생활비는 언제든 빌릴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천준호 “고금리 기조에서 시중은행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예대마진(대출과 예금금리 차이) 수익이 서민금융에 더 환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중은행들은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로 저신용자 대출에 소극적인데, 이들을 위한 소액 대출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은행이 상여금, 퇴직금 잔치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서민금융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안용섭 “전남 영암군에서 긴급 생계자금이 필요한 지역주민에게 최대 500만원까지 대출해 주는 펀드를 조성한 사례가 있다. 이같이 긴급 소액 생활비는 무이자, 무담보, 무보증으로 대출해 주는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