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은행 로고.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에 대한 유동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기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늘렸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연체가 급증하면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연체 잔액은 약 3000억원, 연체율은 2.40%로 집계됐다. 2021년 말 대비 연체금액은 1000억원, 연체율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전체 금융사 중 증권사 연체 잔액 3638억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앞서 저축은행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저금리 상황과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자, 부동산 PF대출 규모를 늘려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부동산 PF대출 규모는 2019년 말 6조3000억원, 2020년 말 6조9000억원, 2021년 말 9조5000억원, 지난해 3분기엔 10조7000억원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3년 새 69.84%가 증가한 셈이다. SBI·OK·웰컴·페퍼·한국투자저축은행 등 5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2조6295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45% 증가했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등 규모가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길어지면 건전성이 악화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PF대출은 거액여신 특성상 금융위기 시 건전성 지표를 단기간 악화한다. 지난해 부동산 PF대출 채무불이행이 금융시장 전반의 신뢰를 하락시키고 채권 등 자금조달 시장을 경색해 레고랜드 사태를 유발한 바 있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PF 부실 가능성이 지속해서 부각 중이다”라며 “지난 2011년 일어난 저축은행 연쇄 부도 사태 역시 부동산 PF 부실이 기폭제로 작용했는데, 수익성 저하나 건전성 악화는 저축은행이 감수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비춰볼 때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관리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스타트업의 주거래은행인 SVB는 거액의 기업예금 위주로 커진 보유 자산을 미국 국채와 기관채에 투자했다. 그러나 지난해 시작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비용이 증가하고 채권 평가손실까지 발생해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SVB에서 예금을 대거 인출하며 ‘뱅크런’이 발생했다.

‘뱅크런’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환경에 따른 취약 투자 부문에 대한 위험 관리가 필요한데, 최근 한국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는 만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위험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권이든 부동산이든 금융환경에 따른 취약 투자 부문에 대한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며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인 만큼 저축은행은 PF대출로 인한 손실률을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의 유동성 전망 역시 좋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고금리 예금 유치로 저축은행의 조달비용이 증가했지만, 대출금리는 법정최고금리(20%)에 막힌 탓에 저축은행 수익성이 악화했다. 이날 기준 79개 저축은행의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3.74%로 올해 초 5.37%에서 약 3개월 만에 1.63%포인트 하락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3% 초중반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예금금리 하락으로 수신 잔액이 빠지게 되면 SVB 사태처럼 대규모 예금인출 상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정 연구원은 “2018년 이후 급증한 5000만원 초과 거액예금, 은행권과의 금리 격차 축소 등에 기인해 저축은행 수신 이탈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며 “저축은행이나 업권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될 경우 예금 이탈 가능성이 커지며 유동성 지표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저축은행 업계는 SVB 사태에 따른 유동성 충격 우려에 선을 긋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난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저축은행 업권 전체의 유동성 비율은 177.1%다”라고 밝혔다. 저축은행 감독규정에 따라 저축은행은 3개월 이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자산과 부채를 기준으로 유동성 비율을 100% 이상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