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들의 재테크 전략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예·적금 금리 인상 속도는 주춤해진데다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내 부동산과 주식 시장도 부진해 마땅한 투자처가 보이지 않아서다.
업계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속도와 경기 국면 변화에 대비해 새해 투자 계획을 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저성장·저물가 환경을 뜻하는 디플레이션이 온다면 ‘채권 투자와 현금 보유’가 유리하고, 저성장·고물가를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경기 국면에서는 ‘원자재와 달러 투자’가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세계 금융 시장, 내년 경기 후퇴 경고음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계 석학과 금융시장 거물들이 잇따라 경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경기는 안 좋은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라한 전망의 배경에는 금리 조절을 통한 통화정책만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깔려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임금 인상에 따른 생산 비용 증가 등 공급 위축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주 요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는 6일(현지 시각)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모든 것을 침식시키고 있다”며 미국이 내년 완만하거나 강한 경기침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도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순탄치 않은 시기에 들어설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한 ‘닥터 둠(세계경제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미국 뉴욕대 교수는 최근 미국 투자전문매체 더 스트리트를 통해 “세계 경제가 전례 없는 스태그플레이션과 부채 증가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급증한 부채를 주요 문제로 지목했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민간·공공부문 부채가 1999년 200%에서 2021년 350%로 증가했다. 그는 “명시적인 부채 규모만 봐도 수치가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중앙은행이 개인과 기업의 막대한 부채와 고공 행진하는 인플레이션까지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각국 중앙은행의 재정 부양책을 통해 돈의 시장에 과도하게 풀렸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커지고, 당시 파산했어야 할 부실기업들까지 구제받게 됐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루비니 교수는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가 경착륙한 이후 장기간 지속될 침체 국면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가 하면 물가가 내리면서 경기 후퇴가 가속화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다. 각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부동산과 증권시장의 거품이 붕괴되고 이에 따른 소비·투자 부진, 물가 하락,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란 논리다.
◇ “자산 분산 중요… 채권 기회 주목해야”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내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변동성 대응에 초점을 두는 투자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동시에 내년에는 금리 인상 사이클이 후반부에 이를 것이란 관측 하에 채권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잇따랐다.
KB국민은행은 KB 하우스뷰를 통해 ‘채권 ≥ 주식 > 대체(부동산, 인프라, 원자재 등)’ 순으로 우선순위를 두는 자산 배분 전략을 제시했다. 여기엔 한국은행이 내년 1분기 중 금리 인상을 종료하면서, 통화 긴축 부담이 완화하고 국내 소비자 물가가 하락하면, 이에 힘입어 국내 채권 투자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KB국민은행은 “주식과 채권 간 높았던 상관관계가 다시 낮아져 자산배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내년에는 국내외 주식, 채권 등에 분산 투자하는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 채권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수요가 감소하면서 가격이 내려간다. 올해 주식과 채권 가격은 금융당국의 기준금리 인상(통화 긴축) 영향으로 약세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내년 경기 위축이 본격화되고 한은의 금리 인상이 종착점에 이르면서 다시 채권에 대한 선호도가 생기고, 이에 따른 채권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논리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물가가 오르면 채권 상승률이 둔화하고 금리 인상으로 수익률이 일시적으로 나빠지지만, 금리 인상이 끝날 때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침체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꺾이는 시점에는 채권 가격이 상당히 오를 수 있다”면서 “채권 가격이 하락해 있을 때가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KB국민은행은 “경기 침체가 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채 등 우량 채권을 중심으로 투자하는 전략이 유효하다”며 “하이일드채권은 크레딧 스프레드의 확대로 투자 수요가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이일드채권은 투기 등급에 해당하는 BB급 이하 채권으로, 위험이 큰 만큼 높은 만기 이자율을 제공한다.
주식 시장은 경기 침체, 기업실적 둔화 등의 여파로 상반기까지는 변동성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원자재 시장은 세계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이 여파로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