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우리 증시가 모처럼 반등하며 ‘가뭄 속 단비’가 내린 가운데, 투자자들은 이 같은 상승세가 8월에도 계속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물가가 어느 정도 진정됨에 따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강도가 낮아질 것이며, 올 들어 침체됐던 주식시장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지난 달의 상승이 일시적인 베어마켓랠리(약세장 속 반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환율과 경기 등 시장을 둘러싼 매크로(거시) 환경이 여전히 부정적인 만큼 반등세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섣부른 매수에 나서지 말고 9월까지는 관망하라고 조언한다.

◇ 코스피 한 달 간 6% 올라…연준 긴축 속도 조절론 급부상

증시의 반등은 7월 초 시작됐다. 4일 장중 2300선을 내줬던 코스피지수는 6일을 기점으로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렸고, 29일에는 2463.05까지 오르며 6월 16일 이후 최고점을 회복했다. 한 달 간 누적 상승률은 5.6%를 기록했다.

이 기간 주요 선진국 증시도 함께 반등했다. 특히 미 나스닥지수가 그간 낙폭이 컸던 만큼 많이 반등했다. 지난 한 달 간 11.3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니케이225지수도 7% 가까이 올랐으며 유로스톡스50은 7.53% 상승했다.

그래픽=이은현

올 들어 꾸준히 하락했던 국내외 증시에 불어온 훈풍은 바로 인플레이션의 고점 통과 조짐이었다. 먼저 인플레이션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국제유가가 내림세를 지속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스사스유(WTI) 9월물 선물 가격은 6월 초 고점(122.11달러)과 비교해 20% 가량 떨어진 상태다. 두바이유 8월물은 14% 내렸다.

곡물 가격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 9월물 선물 가격은 지난 달 25일 부셸 당 580센트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올해 1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두 8월물 가격도 지난 달 21일 연초 수준까지 내렸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가 하락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완화가 기대 인플레이션 완화로 직결됐다”며 “기대 인플레이션은 연준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변수 중 하나이며, 통화정책의 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치솟던 물가가 안정될 조짐이 나타나자 시장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툴(FedWatch tool)에 따르면, 단기 금융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이 9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만 인상할 확률이 70.5%라고 본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0.5%포인트 인상 확률은 43.9%에 불과했다. 0.75%포인트를 올릴 확률이 45.9%로 더 높았다.

◇ 强달러 압력 여전해 신흥국 불리…“유로화 가치 하방 압력 커”

그러나 전문가들은 증시 반등이 8월에도 지속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인플레이션의 진정이 아직 연준의 정책금리에 영향을 줄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 연구원은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전월 대비 낮아지겠지만, 이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주식시장에 반영된 상태”라며 “물가가 아직 통화정책 경로에 영향을 줄 만큼 하락한 것은 아니며, 4분기 서비스 물가의 유의미한 하락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현재 시장이 연준의 긴축 속도 조절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부문장은 “최근 미 국채 2년물 금리가 2.8%까지 떨어졌는데, 여기에는 기준금리가 올해 말 3% 조금 넘는 수준까지 올랐다가 2024년 중순쯤 2%대 초중반까지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돼있다”고 말했다. 즉 기준금리를 올해 말 3.5%, 내년 상반기 4%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연준의 계획을 시장에서 전혀 믿지 않는다는 얘기다.

외환 시장의 여건도 우리 증시의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기엔 역부족이다. 올 들어 미국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려 달러 강세 압력이 높은 상황인데,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큰폭으로 하락(원화 가치가 상승)하지 않는다면 외국인 자금의 추가 유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미 달러인덱스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 달 14일(현지 시각)에는 108.544를 기록하며 2002년 12월 이후 20년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재는 다소 진정된 상태지만 뚜렷한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

그래픽=이은현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달러인덱스는 전세계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의 평균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그 중 유로화의 비중이 46%나 된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과 겨울철 가스 공급의 불안정성 등으로 유로화 약세 압력이 큰 만큼, 미 달러의 상대적 가치는 3분기 고점을 찍고 떨어지더라도 큰폭으로 하락하진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로존의 경기 침체 우려도 유로화 약세 및 미 달러화의 강세 압력을 키울 전망이다. 현재 유럽의 매크로 지표는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7월 유로존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6을 기록하며 전월 대비 2.6포인트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PMI가 50 밑으로 떨어지면 경기 수축을 의미한다.

정 상무는 “유럽도 미국처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 기준금리를 올리긴 해야겠지만, 경기에 대한 불안이 워낙 커 4분기 초까지만 금리를 인상한 뒤 물가 상승세가 주춤해지면 언제든지 긴축을 종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화 자체의 약세 요인도 있다. 최 부문장은 “우리나라가 원자재 가격 급등 때문에 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내고 있는데, 이 역시 원화 약세(달러화 강세)에 기름을 붓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넘을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 불안이 증시 상단 누를 것”

환율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에 대한 불안도 상승장의 지속을 어렵게 만들 전망이다.

최 부문장은 “작년에는 유동성이 넉넉한 가운데 경기 상황도 괜찮았기 때문에 증시의 상승 동력이 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연준이 설령 긴축 속도를 늦춰 유동성 축소를 조절한다 하더라도, 이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최 부문장은 지난 달의 상승장이 일시적인 베어마켓랠리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는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증시가 반등하더라도 경기 둔화 리스크가 커지면 다시 하강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 상무 역시 증시가 상승 추세로 돌아서기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그는 “온전한 상승세로 전환하려면 통화정책의 방향이 긴축에서 완화로 완전히 돌아서거나 경기가 확장 국면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둘 다 올해 안에 일어나긴 어려운 일들”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의 반등은 단기 낙폭이 컸던 종목에 대한 저가 매수로 해석해야 한다고 정 상무는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9월 20~21일(현지 시각)로 예정된 FOMC를 기다리며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발표를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물가지수가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지 않는다면 상승장이 나타나기 어려운 만큼, 섣불리 투자를 늘리지 말고 관망할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