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코스닥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한 원티드랩은 1731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5조5300억원의 청약 증거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채용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회사는 상장 직후 이른바 ‘따상(공모가의 2배에 시초가를 형성한 후 상한가)’으로 직행하며 공모가보다 160%나 상승했다.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37)은 원티드랩에 창업 멤버 4명이 있던 때 초기 투자하며 약 20배의 수익을 올린 심사역이다. 원티드랩 뿐 아니라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도 초기 투자했다. 업비트가 개설되기도 전인 2017년의 일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두나무의 현재 기업 가치가 오 부사장이 투자했던 시점과 비교해 약 100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산한다.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 /뮤렉스파트너스 제공

오 부사장은 올해 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와이더플래닛, 차량 수리 견적 비교 업체 카닥 등에도 투자하며 당시 근무하던 회사(스톤브릿지벤처스)에 상당한 수익을 안겨줬다. 정작 그는 정작 2017년 뮤렉스파트너스를 창업하기 위해 스톤브릿지벤처스를 퇴사했기 때문에 성과 보수를 받지는 못했다.

폭염이 전국을 뒤덮었던 지난달 말, 서울 신사동 뮤렉스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오 부사장을 만나 투자 경험과 투자관 등을 물었다. 뮤렉스파트너스는 세 명의 심사역이 창업해 살뜰히 꾸려온 중소형 VC로, 작지만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회사 안 곳곳에서 묻어났다.

원래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기를 꿈꿨는지.

“학창 시절에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인천 과학고에 다녔는데, 시험 자체가 어렵긴 했지만 내가 선행 학습을 전혀 못 한 채 얼떨결에 입학했기 때문에 졸업 전까지 수학·과학 과목에서 100점 만점에 50점도 못 넘어 봤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수학이나 과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하는 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국정보통신대학(ICU·정보통신부에서 설립한 대학으로, 현재는 카이스트에 통합됐다) IT경영학과 03학번으로, 대학 졸업 후 2009년 사업을 배우기 위해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일했다. 그러나 사업에 필요한 역량을 배우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 1년 반 만에 컨설팅 업체인 에이티커니로 이직했다.”

결국 사업을 시도했나.

“컨설팅 업체에 입사하고 1년 뒤부터 주중에는 회사 일을 하고 주말에는 창업을 준비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2년간 지내며 일본의 요리·제빵 스튜디오인 ‘ABC쿠킹스튜디오’와 비슷한 사업 모델을 만들고 투자도 약속받았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다 보니 회사를 어떻게 키우고 경영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 리더십 부족으로 다른 창업 멤버들과의 사이도 나빠졌다. 결국 일본 ABC쿠킹스튜디오 본사까지 찾아가서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만나 대화를 나눠 보니, 우리가 만들었던 사업 모델에 큰 오류가 있더라. 열심히 준비한 사업이었지만 2013년 모든 것을 중단했다.”

쿠킹스튜디오 사업을 접은 후 창업을 포기했나.

“포기하지 않았다. 사업을 접기 전 당시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근무하던 위현종 현 쏘카 전략본부장과 프랙시스캐피탈의 라민상 대표를 만난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은 기억을 못 할 수 있지만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결국 창업을 다시 잘하기 위해 VC에 들어가서 내가 하려고 했던 사업에 관한 케이스스터디(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만나 무엇을 느낀 건지.

“스타트업에 관해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스타트업 창업과 경영에 필요한 경험들을 켜켜이 쌓아온 사람들이 아닌가. 나도 그런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다시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VC 업계에 뛰어들었다.”

VC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1년간 VC 채용 면접을 두 번 봤다. 그때는 심사역을 많이 뽑지 않던 시기였다. 두 번째로 면접 본 곳이 스톤브릿지벤처스였고, 2014년 6월 합격해 입사하게 됐다.”

막상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돼보니 어땠는지.

“얼마 동안은 다시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놓지 않았는데 오래가지 않아 생각이 바뀌더라. VC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좋은 시장에서 많은 사례를 공부하다 보면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창업은 ‘기회’나 ‘말이 되는’ 사업 모델과 같은 객관적인 요소보다는 ‘반드시 이 일을 해내야 한다’는 절실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쿠킹스튜디오를 ‘그동안 국내 시장에 없었던 사업 모델 중 고도의 기술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회사’라는 이유로 선택했다. 그런 식으로 사업해서는 절대 안 됐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좋은 투자자가 되는 데 좀 더 집중했다.”

VC에 입사하고 가장 먼저 투자한 회사가 어디였나.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되고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첫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전에 100장 넘는 보고서를 쓰며 진지하게 투자를 추진했던 곳도 있었는데, 회사 내부 투자심의위원회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2015년 9월 맞춤 셔츠를 만드는 스트라입스에 15억원을 투자했다.”

열심히 준비한 투자 건이 회사 내부에서 반려됐을 때 심정은 어땠나.

“사실 투심위의 의사 결정 구조는 굉장히 좋은 것이다. 업계에 처음 오게 되면 회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허들이 낮다. 즉, 스타트업의 성장성과 사업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옆에서 투심위가 중심을 잡아주고 제대로 된 판단을 도와줘야 한다.”

초반에 투자한 회사 중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스트라입스에 투자한 같은 달, 채용 정보 플랫폼을 운영하는 원티드랩(376980)에 5억원을 투자했다. 원티드랩은 당시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의 투자·보육 업체) 스파크랩에서 막 투자를 받은 초기 단계였다. 직원도 창업 멤버 네 명밖에 없었다.”

2018년 뮤렉스 파트너들과 피투자사 창업가들이 연례 미팅 후 다같이 촬영한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뮤렉스파트너스의 이범석 대표, 강동민 부사장, 오지성 부사장, 송치형 두나무 의장, 이수진 야놀자 총괄대표, 김택동 레이크투자자문 대표, 김기봉 글로벌네트웍스 대표. / 뮤렉스파트너스 제공

원티드랩에는 어떻게 투자를 결정했나.

“스파크랩에서 진행한 데모데이(스타트업이 투자자에게 제품과 서비스 및 사업 모델을 선보이는 행사)에서 창업 멤버들을 처음 만났다. 과거 컨설팅 업체에 다닐 때 인적자원 관리(HR) 프로젝트를 담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원티드 서비스를 특히 눈여겨봤다. 원티드는 추천한 사람이 기업에 채용될 경우 추천인과 합격자 모두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채용 플랫폼이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이라고 느꼈다.

원티드의 채용 플랫폼이 특히 좋았다고 느낀 부분은 네트워크의 확장성이었다. 한 명이 두 명을 추천하고 그 두 명이 다시 두 명씩 추천하면, 이용자는 지수(指數)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 구조라면 향후 사업이 J커브(알파벳 J모양으로 급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를 그리며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원티드랩의 기업 가치는 투자 시점과 비교해 얼마나 올랐는지.

“공모가(3만5000원) 기준으로 15~20배 정도 올랐다. 이후 2017년 4월에도 추가 투자를 했다. 그러나 그 해 퇴사해 뮤렉스파트너스를 창업하는 바람에, 투자금 회수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 됐다.”

20배나 올랐는데 성과급을 받지 못한다니 아쉽지 않은가.

“사실 원티드랩 뿐 아니라 두나무에 투자했던 성과급도 못 받고 퇴사했지만, 그런 부분은 그리 아쉽지 않다. VC 업을 잘하려면 결과로 따라오는 수익률에 연연하는 것이 별로 좋지 않더라. 투자 수익률에 일부러 더 신경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두나무에는 언제 투자한 건가.

“주식 투자 애플리케이션(앱) ‘카카오증권’을 운영하던 2017년에 투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아직 서비스되기 전이었고, 개설 계획만 있던 시기였다. 암호화폐 시장이 지금처럼 성장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카카오증권의 성장성과 창업 팀에 더 주목해 투자를 결정했다.

원래 30억원 정도를 투자하려다, 절반인 15억원을 투자하게 됐다. 당시 기업 가치가 1000억원 정도였다(IB 업계에서는 두나무의 현재 기업 가치를 최소 10조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두나무에서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두나무

두나무 창업자의 어떤 역량에 주목하고 투자를 결정했나.

“송치형 두나무 이사회 의장과는 지인 소개를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다날에서 근무하다 2012년 창업을 해서, 대여섯 번의 피봇(스타트업이 신제품을 출시 한 후 시장 반응을 보고 다른 사업 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거쳐 카카오증권을 출시한 상태였다.

송 의장은 역량이 뛰어나고 과감한 경영자였다. 예를 들어 당시 증권 서비스 앱 중에서는 ‘증권통’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후발 주자였던 두나무가 카카오와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소비자에게 더 나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제공하며 따라잡았다.

송 의장은 또 증권과 핀테크, 암호화폐에 대한 관점이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암호화폐가 성장 가능성이 확인되지도 않은 초기 단계였지만, 언젠가 시장이 크게 성장한다면 두나무가 선도 사업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그때 했던 판단이 적중했던 것 아닌가.

“준비돼있는 팀은 거대한 흐름을 만났을 때 아주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나무는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길목에서 카카오증권을 통해 거래소 사업 경험을 쌓아왔기에, 간발의 차이로 좋은 서비스(업비트)를 먼저 내놓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이 규제 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안 했는지.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창업가들이 잘 해결해낼 수 있다고 막연하게 믿었던 것 같다. 사실 증권 거래 플랫폼도 규제가 있는 사업이었는데, 두나무는 그 문제를 잘 풀어내고 카카오증권을 운영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투자 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개인 대 개인(P2P) 부동산 투자 업체 어니스트펀드에 투자하기까지 곡절이 있었다.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와는 2015년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운영사) 대표의 강력한 추천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서 대표가 초기 투자를 유치 중이었는데, 나는 세 시간 동안 왜 투자를 할 수 없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투자를 거절했다. 2016년에도 투자를 한 차례 더 거절했다. 그 정도면 기분이 상할 법도 하지만, 서 대표는 오히려 내 피드백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줘 나와 더욱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어니스트펀드에는 결국 2018년 9월 첫 투자를 시작으로 2019년과 2020년 총 세 번에 걸쳐 투자했다. 앞서 두 차례 투자를 거절했을 때까지만 해도 회사의 성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무섭게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스타트업과 창업가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내 판단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은 피투자사 창업가들 중 특히 서 대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어니스트펀드

‘좋은 창업가’의 보편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키워드를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절실함’이다. 사실 시장 전망은 많은 창업가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차별점이 되지 못한다. 좋은 창업가는 절실함과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믿는 세상이 올 때까지 차근차근 준비하며 기다릴 줄 안다. 외부의 변화보다는 자기 내면에서 비롯한 사명감과 이 문제를 꼭 풀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사업의 성공은 운칠기삼(성패가 노력이 아닌 운에 달려 있다는 뜻)이라는 말도 있지만, 운은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기다리며 준비돼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속된 말로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비속어)’ 정신이라고도 하지 않나.”

반대로 투자를 결정할 때 배제하는 창업가 유형도 있나.

“사업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은 창업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대화가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대답을 못 하는 분들이 있더라. ‘이 사업이 왜 잘 될지, 내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보다 이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면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얘기만 하는 창업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에 대한 고민의 깊이는 한두 번의 기업 설명회(IR)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창업가와 최소한 3개월 이상 관계를 맺으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 본 후 투자를 결정한다.”

2017년 VC 뮤렉스파트너스를 창업하며 오 부사장 스스로도 창업가가 됐다.

“VC에 입사하기 전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운영하는 투자 심사역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같이 교육을 받던 100여 명의 동기 중 오종욱 캡스톤파트너스 이사, 장동욱 카카오벤처스 수석팀장, 장호영 JKL파트너스 상무, 정무일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 이사, 그리고 우리 회사의 강동민 부사장이 있었는데, 그들과 마음이 잘 맞아 정기적으로 모여 스터디를 해왔다. 모임에 ‘러닝메이트’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도 비대면 방식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있다.

스터디를 통해 피투자사에 대한 얘기도 했지만, VC업 자체에 대한 고민도 많이 나눴다. 스타트업은 사업을 계속 혁신하는 반면, VC 산업은 혁신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1998년과 2018년의 VC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대중이 VC 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비판을 많이 한다고 느꼈다. 너무 단기적인 수익에만 연연한다든가, 혹은 투자와 관련된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든가 하는 비판이 많더라. 이것이 VC의 개별적인 문제일지 아니면 VC 업의 구조적인 문제일지 다 같이 고민하다가 ‘뉴머니’라는 책도 냈다.

그러던 중 스터디 멤버였던 강동민 부사장이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에 있던 이범석 (당시) 상무와 함께 VC를 창업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 뮤렉스파트너스의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원티드랩이나 두나무 투자를 통해 받을 성과보수보다는 새로운 비전을 갖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성공은 결과적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현재 뮤렉스파트너스에서 운용 중인 투자금은 얼마나 되나.

“1700억원 정도다. 총 5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펀드를 결성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 2017년 말에 회사를 차렸는데 첫 펀드를 2018년 3분기에야 결성할 수 있었다. 당시 출자자(LP) 100곳과 만나면 그 중 2곳에서만 출자를 받을 수 있었다. 타율이 2%에 불과했던 것이다.

LP를 유치하기 위해 뮤렉스에서 사용한 전략은 벤처 펀드의 콘셉트를 확실히 잡고 홍보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인 1가구를 위한 산업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라든지, 60대 이상 고령자를 위한 시니어 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었다. 이렇게 확고한 콘셉트를 잡으면 해당 산업군의 스타트업은 투자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우리 회사에 찾아올 확률이 높다. LP에도 이런 점을 강조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며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VC 업은 일종의 감정 노동인 것 같다. 창업가들은 겉으로 행복해 보이더라도 굉장히 큰 마음의 상처와 짐을 안고 산다. 물론 벤처캐피털리스트가 피투자사의 사업에 대해 창업가만큼 고민하지는 않지만, 투자하고 관리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에 여러 창업가의 고민과 짐을 같이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창업가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며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

그래도 피투자사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연락받는 VC가 되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피투자사 창업가들과 카카오톡으로 거의 매일 대화하는 것 같다. 밤낮없이 연락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VC 업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이 보장된 업도 많지만, VC는 그렇지 않다. 시장에서 큰 ‘바람’이 불어줘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이 아무 의미 없다는 회의론에 빠져서도 안 된다. 대신 오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만 한다.

또 성공할 회사를 잘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투자사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벤처캐피털리스트를 지망하며 ‘좋은 회사를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데, 투자한 회사의 고민을 나누고 유의미한 조언을 해주며 꼭 필요한 도움을 주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