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가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또 생떼를 쓰고 있다. 도를 넘어선 발언으로 압박하며 지역 이기주의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범석 청주시장은 지난 19일 “최근 10년 동안 청주시가 120억원을 들여 KBO와 한화 구단이 요구한 시설 개선을 해왔는데 청주에 프로야구 경기를 배정하지 않는 것은 청주 팬들에 대한 배신이다. 성적과 상관 없이 열정적으로 응원해준 청주 팬들을 위해서라도 경기를 지속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신’이란 자극적인 단어를 쓰며 한화 구단에 청주 경기 배정을 압박하는 모양새. 그러나 올해 2만7석 규모의 최신식 대전 한화생명볼파크가 개장한 한화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새 야구장에서 최대한 많은 팬들을 맞이해야 입장 수입을 늘릴 수 있고, 신구장 내에 입점한 식음 매장들과 계약 문제가 얽혀있어 청주로 갈 때마다 경기당 수억원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금전적 이유를 떠나 팬 서비스와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제2구장 경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청주의 경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야구장이다. 1979년 5월 지어진 청주구장은 올해로 47년째가 됐다. 수차례 리모델링을 거쳐 개보수를 했지만 워낙 오래된 구장으로 낙후된 시설에 한계가 온 지 한참 됐다.
관중 1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청주구장은 선수들이 쓰는 내부 공간도 무척 좁다. 홈팀과 원정팀 가릴 것 없이 휴식 공간이 부족해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구장 밖에 대기 중인 버스에서 쉬곤 한다. 원정팀 덕아웃은 천장 모서리가 낮아 머리를 부닥칠 위험이 크다. 공간과 설계 제약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좁은 덕아웃과 라커룸은 불편해도 참고 견딜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높은 그라운드로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선수들은 “청주 인조잔디는 딱딱하고 미끄러워 다리에 부담이 많이 간다. 땅도 고르지 않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청주구장에서 울퉁불퉁한 지면을 잘못 밟아 발목을 삐끗해 경기에 못 나간 선수가 있었고, 내야 잔디에 발이 걸려 넘어져 근육통으로 교체된 선수도 있었다. “청주에 오면 안 다치고 가는 게 목표”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5년간 개최되지 않은 청주구장 경기는 지난해 어렵게 KBO 시설 점검을 통과하며 5경기가 열렸다. 이에 앞서 19억원을 투자해 인조잔디를 교체하면서 나름대로 개선했다지만 여전히 불안불안하다.
지난 8일 시범경기 개막전 때 한화 중견수 에스테반 플로리얼이 수비를 하다 미끄러운 잔디에 발이 밀려 휘청이며 넘어질 뻔 했다. 큰 부상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한화로선 한 해 농사를 망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같은 날 문현빈이 타격 후 1루로 뛰다 햄스트링이 올라온 것도 추운 날 딱딱한 그라운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팬들에게도 청주구장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좌석 간격이 비좁고, 경사가 심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위험하다. 주차 공간도 부족하고, 야구 관람의 재미 중 하나인 먹거리마저 부실하다. 구장 내 매점은 하나뿐이고, 외부에 천막을 친 매점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한화를 응원하는 청주 팬들의 열기는 쉽게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환경을 갖춰 놓지도 않고 매년 한화에 무리한 요구하는 청주시의 행태는 도를 넘어섰다. 구단과 선수들에 희생만 요구할 게 아니라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
혈세 낭비로 지적받는 기존 구장 개보수에 눈먼 돈을 쓸 게 이나라 새 야구장을 짓는 시늉이라도 해야 팬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KIA 타이거즈의 제2홈구장 및 퓨처스리그 경기 유치를 목표로 하는 전주시는 사업비 585억원을 투자해 2026년 완공 예정인 새 야구장을 짓고 있다. 청주시가 구장 개보수에 10년 동안 투입한 120억원을 신구장 건립에 썼더라면 이렇게 아깝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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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상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