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율 좀 깎이겠네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한 우완 사이드암 투수 엄상백(29)은 같은 팀이 된 주장 채은성에게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채은성은 2023~2024년 2년간 KT 소속 엄상백을 상대로 타율 4할1푼7리(12타수 5안타) 3홈런으로 강했다.

채은성보다 더 엄상백을 괴롭힌 한화 타자는 노시환이다. 통산 맞대결에서 홈런 2개 포함 무려 타율 5할(26타수 13안타)을 기록한 ‘엄상백 킬러’였다. 노시환에게도 “타율 좀 깎이겠다”고 농담을 했다는 엄상백은 “한화한테 엄청나게 약했다. 은성이 형과 시환에게가 제 공을 진짜 잘 쳤다”며 “평균자책점을 4점대 초반으로 내려서 3점대 고지가 보일 때마다 한화를 만나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엄상백은 지난해 한화전 4경기에서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9.35로 가장 약했다. 8월1일 수원 한화전에선 개인 최다 10실점(5이닝)으로 크게 무너지기도 했다. 작년 한 해만 그런 게 아니라 2015년 데뷔 후 줄곧 한화에 약했다. 한화전 통산 32경기(16선발) 3승8패5홀드 평균자책점 8.05로 크게 부진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한화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은 엄상백은 4년 최대 78억원 조건으로 한화에 이적했다. 이번 FA 투수 중 최고 대우로 팀을 옮기면서 스스로 천적 팀을 제거한 것이다. 이제는 적이 된 KT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약했던 팀이 사라지면서 개인 성적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시즌 평균자책점은 4.88로 13승 투수치곤 꽤 높은 편이었는데 한화전을 제외하면 4.33으로 낮아진다.

10년 몸담은 KT를 떠나 야구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 엄상백은 호주 멜버른 스프링캠프에서 이적 첫 시즌을 준비 중이다. 그는 “FA 계약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크게 기쁘진 않았다. 스무살 때는 이런 상상을 하면 행복했는데 이제 서른살이고, 그동안 제가 걸어온 길이 있어 그런지 생각보다 덤덤했다. 한편으로는 팀을 옮기는 것도 처음이라 쉽지 않았다”며 “마냥 기쁘진 않았지만 기쁠 일을 앞으로 한화에서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엄상백의 한화행을 기뻐했다. 충주 출신으로 한화를 응원해온 아버지가 특히 더욱 좋아했다. 엄상백은 “아버지가 저 7살 때부터 한화 경기를 보러 야구장에 데려가셨다. 프로 입단 후에는 KT를 응원하셨는데 이번에 한화로 오면서 아버지가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2015년 신생팀 KT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엄상백은 1군 9시즌 통산 305경기(107선발·764⅓이닝) 45승44패3세이브28홀드 평균자책점 4.82 탈삼진 670개를 기록했다. 2021년 7월 상무에서 전역한 뒤 선발로 자리잡았다. 풀타임 선발이 된 2022년부터 최근 3년간 82경기에서 408⅔이닝을 던지며 31승18패 평균자책점 3.88 탈삼진 387개로 안정감을 보였다. 이 기간 국내 투수 중 다승 공동 4위, 이닝 8위, 300이닝 이상 투수 중 평균자책점 7위. 시속 140km대 중반 직구를 던지는 강속구 사이드암으로 커터, 체인지업이 주무기인 엄상백은 몇 가지 물음표가 붙어있는 한화 선발 로테이션에서 확실하게 계산이 되는 전력으로 기대를 모은다.

엄상백은 “작년처럼 아프지 않고 풀타임 선발을 하고 싶다. 아프지만 않으면 기회는 오더라. 작년 시즌 초반에 너무 안 좋았는데 스트레스로 두통이 온 것도 처음이었다. 5월부터 마음을 내려놓고 하다 보니 어느새 10승을 하고, 13승까지 하게 되더라. 사람이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하던 대로 하겠다”며 이적 첫 해라고 해서 너무 욕심 부리지 않겠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4월까지 시즌 첫 7경기에서 엄상백은 1승6패 평균자책점 6.23으로 부진했다. FA 시즌에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 힘이 너무 들어갔고, 생전 겪어보지 못한 스트레스성 두통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마음을 비운 5월 이후에만 무려 12승을 거두며 반등했고, FA 대박까지 쳤다. 지난해 얻은 교훈이 한화에서의 첫 시즌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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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멜버른(호주), 이상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