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열린 글로벌 모터쇼 ‘상하이모터쇼’에서는 현대차·폭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신차를 대거 공개했다. 현대차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전기차 ‘G80 전기차 버전’을 최초로 공개했고, 폭스바겐은 대형 크로스오버 전기차 ‘ID.6’를, 메르세데스-벤츠는 준중형급 전기 SUV ‘EQB’를 처음 내놓았다. 전기차에 소극적이던 도요타도 첫 전기 SUV 콘셉트 ‘bZ4X’를 선보였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모터쇼에서 전기차는 일부 업체가 콘셉트카 정도로 공개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완성차 업체들이 모터쇼에서 내세우는 모델 대부분이 전기차일 정도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전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애플·샤오미·화웨이 등 글로벌 IT 공룡과 리비안·루시드와 같은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뛰어들면서 전기차 시장은 격전이 펼쳐지게 됐다.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을 충전하는 모습.

2019년 200만대를 돌파한 글로벌 전기차 판매는 올해 25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딜로이트는 앞으로 10년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연평균 29% 성장해 2025년 판매량이 1120만대, 2030년에는 3110만대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5% 수준에서 2030년이 되면 25%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과거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전기차는 몇 가지 모델에 불과했다. 세계 전기차 시장 1위 업체인 테슬라가 판매하고 있는 전기차는 모델3·모델S·모델X·모델Y 등 4종에 불과하다. 그런데 완성차 업체들이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반 세단은 물론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픽업트럭, 슈퍼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기차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럽 교통환경국과 IHS마킷 등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 출시될 전기차는 100여종에 이른다.

폭스바겐은 ID.3, ID.4를 내놓은데 이어 ID.6를 공개했고, 전기차 i3와 iX3를 판매하고 있는 BMW는 올해 iX와 i4를 출시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70종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BMW는 2023년까지 13종의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고, 산하 브랜드인 MINI는 2025년 마지막 내연기관 모델을 출시하고 2030년엔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GM은 2025년까지 30종 이상의 전기차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인데, 최근 볼트 EUV에 이어 픽업트럭인 허머의 전기차 버전을 공개했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순수 전기차 모델을 내놓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2025년까지 15개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고, 혼다 역시 2040년 이후에는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만 판매하겠다고 천명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등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순수 전기차 모델을 잇달아 선보인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23종의 전기차를, 기아는 11종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그래픽=이민경

내연기관차의 마지막 보루였던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같은 럭셔리·슈퍼카 브랜드 역시 전동화의 물결에 합류했다. 이미 순수 전기차 브랜드 타이칸 모델을 출시한 포르쉐는 2025년까지 전체 모델의 65%를 전기 구동차로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첫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SF90 스트라달레를 출시한 페라리는 늦어도 2025년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했다. 폭스바겐·현대차그룹의 투자를 받은 크로아티아 스타트업 리막은 올해 최고출력 1888마력의 전기 슈퍼카 콘셉트투를 출시할 예정이다.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탄소 배출 규제다. 유럽연합은 올해부터 자동차 업체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을 1㎞당 95g으로 정하고, 이를 초과하면 1g당 95유로(약 13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해당 규제는 2023년 62g, 2050년 10g으로 점차 강화된다. 우리 환경부도 완성차 업체가 전체 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로 채우지 못할 경우 벌금과 같은 기여금은 내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규제 강도는 해마다 강화되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채찍'과 함께 '당근' 정책도 내놓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친환경차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는 등 전기차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주행거리가 짧고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우려가 감소했고,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친환경차 개발과 양산 체계를 구축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업체들은 전기차 전용 생산기지 구축에 나섰다. 폭스바겐은 2년 전 미국에 8억달러(약 9000억원)를 투자해 테네시주 채터누가 공장에 전기차 생산 핵심 기지를 설립하고, 중국에도 전기차 생산 시설을 추가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중국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본국 독일의 엠덴 공장은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전환하고, 이곳에서 생산하던 내연기관차는 체코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BMW 중국 공장에서 전기차 iX3를 생산하는 모습.

BMW와 GM 역시 전기차 생산을 위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BMW는 2026년까지 4억유로를 투자해 현재 자동차 엔진을 생산하고 있는 독일 뮌헨 공장을 전기차 생산 기지로 개조하고, GM은 미국 디트로이트 햄트래믹 공장을 전기차 전용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키겠다며 22억달러를 투자할 방침이다. 현대차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유럽·동남아 4곳에 전기차 생산 거점을 마련할 계획이다.

글로벌 업체의 투자와 함께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면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선택지를 확보하게 됐다. 게다가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스스로 생산하겠다고 나서면서 자동차 가격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