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간 토지 규제… "땅 주인은 세금 무서워 못 팔고, 기업은 공장 지을 땅 못 구해"

조선비즈
  • 허지윤 기자
    입력 2021.04.09 15:00

    수십년간 땅 갖고 있던 사람도 투기꾼 버금가는 규제
    방치된 땅 효율화 위해 16년 개정한 것을 다시 원점으로
    LH 직원 투기로 개발사업 물꼬 막은 셈

    "나 원참, 졸지에 내가 투기꾼 신세가 됐네요?"

    서울 용산구에 사는 직장인 이 모씨(50)는 1주택자로 경기 평택시에 답과 임야 등 약 2000㎡를 보유하고 있다. 이 씨는 이 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20년째 가지고 있다. 이씨는 언젠가 이 땅을 팔아 노후자금으로 쓸 계획이었다. 이씨는 "지금은 내 여력이 되지 않아 그냥 두고 있지만 언젠간 잘 개발될 곳이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대로라면 이씨는 이 땅을 매도하기 어렵다. 정부가 지난 달 29일 발표한 대책에 따라 세금 규제를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20년간 보유했지만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인정받지 못해 팔아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많지 않다. 사실 매수자를 찾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규제라면 평택시에 살면서 이곳에 농사를 지을 농업인만 이 땅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토지 거래 경색은 땅을 가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토지 규제로는 빈 땅이나 방치된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부동산 개발 사업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토지 규제 부활을 ‘화풀이 대책’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방치된 땅을 효율적으로 개발하자는 취지에서 2015년 말에 장기보유특별공제 등 세법을 개정시킨 것이 불과 6년 전인데 LH 직원의 투기 의혹으로 단숨에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개발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택 공급이 부족해졌고, 3기 신도시를 지정했다가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졌는데 이를 바로잡겠다고 다시 개발사업을 전면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토지 규제를 꺼냈다"면서 "또 엉뚱한 처방이 나왔다"고 했다.

    ◇‘투기꾼’으로 몰린 땅주인들…3주택자 수준의 세(稅) 폭탄

    지난 달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신도시 투기 의혹 논란 이후 투기 근절 방안(3·29 대책) 중 하나로 이런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칼을 빼들었다. 비사업용 토지란 땅 소유주가 현지에 살면서 직접 농업이나 임업, 축산업을 하지 않는 농지·임야, 나대지(빈 땅)나 잡종지 등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매매, 상속 등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서울 이외 지역의 땅은 자동으로 비사업용 토지로 분류된다.

    대책에 따르면 비사업용 토지 양도 시 기본세율(6∼45%)에 붙는 중과세율을 기존 10%포인트에서 20%포인트로 올리고, 최대 30%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3년 이상 보유한 비사업용 토지를 팔 경우 내야 하는 세금은 더 늘고, 공제도 사라진 것이다. 현 정권에서 투기꾼으로 불리는 3주택자에 부과하는 수준의 세금 폭탄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번 조치는 노무현 정부 때의 규제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기도 하다. 2015년 말 세법 개정에서는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얼어붙은 시장을 살리고 토지 거래를 촉진해 ‘노는 땅’, ‘방치된 땅’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뒤이어 불합리하다고 지적된 장기보유특별공제 기산일도 합리화했다. 양도세 공제 기준일은 2016년 1월 1일에서 ‘토지 취득일’로 손질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토지거래 경색만 불러오는 말도 안 되는 규제라고 지적 받았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법을 바꿔 비사업용 토지에 특별공제를 적용하기로 한 것인데 이걸 이번 정부가 5년여만에 또 다시 뒤집어 놓아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래절벽 올 것…공급 위축에 노는 땅 개발사업도 늦어져"

    전문가들은 비사업용 토지 거래가 뚝 끊기는 거래절벽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땅 주인으로선 땅을 팔면서 내야할 세금이 늘어나 매도 명분이 사라지게 되고 이에 따라 토지 시장에 공급이 위축된다는 논리다. 공급 위축은 시장과 산업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령, 공공이나 민간 기업이 부지를 수용, 매입해 개발하려고 하는데 해당 땅이 부재지주의 비사업용 토지일 경우 토지 소유자는 이를 팔면서 부과해야할 세금은 늘고 땅은 뺏기는 격이니 거래하지 않으려 하거나, 세금 부담 분까지 가격에 반영시켜 값을 올리려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현행 법에서 규정한 비사업용 토지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돼있어 문제가 잇따를 수 있다"면서 "사실상 부재지주 땅이 다 중과세 대상이 돼버린 격인데 이 영향으로 시장에 거래·공급이 얼어붙고 개발사업을 위축시키는 등 시장에 부작용이 도미노처럼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공익사업을 위해 비사업용 토지를 수용할 때 적용하던 중과세 배제와 양도세 감면 혜택도 앞으로 줄이기로 했다. 현행 감면율은 10~40%로 연간 1억원, 5년간 2억원 한도다. 이미 보유한 토지 중 사업용 토지로 간주해 중과세에서 배제하던 비사업용 토지 범위는 '사업인정 고시일로부터 2→5년 이전'으로 요건도 강화한다.

    또 내년부터는 주말농장용 토지도 비사업용으로 분류된다. 농지를 사들일 때 꼭 내야하는 농업경영계획서에 영농(농업경영) 경력을 반드시 기재하고 이에 대한 증빙 서류도 꼭 내도록 농지법도 개정된다.

    그야말로 논밭이던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사진 위)는 도시개발사업으로 기업 본사와 연구개발(R&D)센터가 이전하면서 주거기능이 강화된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강서구청 제공
    토지 취득도 어려워진다. 정부는 비(非)주택담보대출에 담보인정비율(LTV)을 신설하기로 했다. 일정 규모(1000m² 또는 5억 원 이상)의 토지를 살 때는 주택처럼 자금조달계획서를 내야 한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토지 매수가 어려워지면서 결국 귀농귀촌 인구도 줄어들고, 전원주택 건설이나 조경 사업자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농지 취득에 대한 규제가 늘어나면서 훗날 농지 문제는 더 꼬일 수 있고, 농촌 지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이상 활동을 못하는 농업인들이 은퇴하면서 농지를 팔아 이를 노후 및 생활 자금으로 쓰는데, 농지 취득에 관한 새 규제가 생기면서 이들의 토지 처분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 LH 직원의 땅 투기가 엉뚱한 규제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또 한 번 엉뚱한 규제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했다. 택지지구 개발 정보를 LH와 국토부, 해당 지역구 의원 등만 독점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투기현상이 문제인데, 모든 토지주를 옥죄는 방향의 규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4년간 주택 공급은 등한시한 채 수요를 누르는 정책을 펼치면서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던 것과 궤가 같다는 지적이다.

    박합수 전문위원은 "제도 하나가 시장과 산업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고 대책이 나왔다"면서 "토지라는 것은 모든 산업 활동의 원천이다. 주택, 공장, 물류창고 등을 짓는 등 부지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땅을 사고 파는 것 자체가 위축되고 까다로워 지는 것으로 각종 산업에 연쇄적으로 지장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공직자 투기 문제를 잡겠다면서 토지를 보유한 전 국민을 투기꾼으로 몰아버린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주택시장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해 공급을 틀어막는 잘못된 메스를 들이댔다가 시장 불안을 키우고 뒤늦게 공급에 나서고 있는데, 토지시장에도 투기를 막겠다면서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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