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앞두고 재판 미룬 안진…계속되는 교보생명 풋옵션 신경전

조선비즈
  • 이상빈 기자
    입력 2021.04.09 13:44 | 수정 2021.04.09 17:31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의 풋옵션 가치 산정 과정에서 FI와 공모해 행사가격을 부풀려 평가한 혐의로 기소된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 3명과 어피니티 컨소시엄 임직원 2명의 재판 공판준비기일이 29일로 잡혔다. 공판준비절차는 정식 공판 전 재판부가 피고인 혐의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 측 의견을 확인하고 조사 계획 등을 세우는 절차로, 공판준비기일은 재판이 정식으로 시작되는 날로 보면 된다. 통상 공판 준비 절차가 끝나면 정식 공판기일이 정해진다.

    업계 일각에서는 피고인 어피니티 측이 재판을 지난 3월 중순 열렸던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 공판 뒤로 미루려고 재판 지연 전략을 구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ICC 공판은 교보생명 풋옵션 갈등의 분수령으로, 공판 결과에 따라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가치가 최대 1조원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검찰 기소가 ICC 공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많았는데, 공판을 미뤄 혹시 모를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9일 법조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피고인 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딜로이트안진과 어피니티컨소시엄 측은 단독 판사 사건을 합의부 심리로 바꿔달라는 내용의 재정합의 신청서를 제출했다. 단독 사건이 합의부로 바뀌게 되면 판사 1명이 보는 사건을 3명의 판사가 담당하게 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사건 당사자가 법원에 재정합의를 신청하는 권한 자체는 없다. 하지만 재판부에 의견 개진은 할 수 있으며, 이번 경우에는 재판부의 직권으로 결국 합의부 심리로 바뀌게 됐다.

    법원의 ‘법관 등 사무 분담 및 사건 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선례나 판례가 없거나 선례·판례가 서로 엇갈리는 사건 ▲사실관계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 등에 해당할 경우 재정합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월 제출한 어피니티 측의 재정합의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지난 3월 사건이 재배정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중순에는 ICC 공판이 있었는데, 재정합의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그 뒤로 공판이 미뤄졌다. 재배정된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재판장 양철한)에 배당됐다. 안진 측 변호인이 재정합의를 신청한 것이 재판 지연 전략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 관계자는 "단독재판부보다 판사 수가 많은 형사합의부가 사건을 더 면밀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피고측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이지만, 재판 지연 전략으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원 측은 이 공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지에 대해서도 물어본 것으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 관심도가 높거나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에서 관련 여부를 묻는데, 피고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 진행되지 않는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컨소시엄 갈등은 9년 전 시작됐다.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주당 24만5000원·1조2000억원 규모)를 매입한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 조건으로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IPO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신 회장이 이 주식을 공정시장가치(FMV)에 대신 매입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신 회장은 IPO를 추진했지만, 결국 약속된 기한을 넘겼다. 어피니티는 추가로 3년을 제시했지만, 마찬가지로 IPO에 실패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신 회장을 상대로 2조122억원(1주당 40만9000원) 규모의 풋옵션을 행사했다. 2012년 컨소시엄이 매입할 때보다 66.9% 높은 금액이었다. 이때 안진의 감정평가 결과를 풋옵션 가격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신 회장 측은 계속된 불황과 저금리 기조로 교보생명 시장가치는 20만원 중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풋옵션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안진 회계사들은 풋옵션의 가치 산출을 의뢰받았는데, 검찰은 회계사들이 이 과정에서 공인회계사의 공정·성실 의무 등을 규정하는 공인회계사법 제15조 3항과 22조 4항을 위반했다고 보고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수사 과정에서 안진이 FI로부터 부탁을 받고 이익을 얻은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FI 측은 "안진에게 지급한 것은 교보생명 가치평가 업무 수행에 대한 용역비와 분쟁이 발생할 경우 법률 비용을 지급해준다는 조항뿐이었다"며 "그러나 이 용역비는 통상적 수준이고 법률비용 역시 흔히 포함되는 조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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